[뉴스토마토 전연주 기자] 가상자산 시장의 자율규제를 담당할 별도 법정협회 신설이 거론되면서, 새 협회에 어느 수준까지 권한을 부여할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법적 근거를 둔 협회를 통해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개별 종목의 상장 및 상장폐지 판단까지 협회가 맡을 경우 거래소 자율성이 침해되고 권한과 책임의 주체가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1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기존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를 법정협회로 전환하기보다, 별도 법정협회를 신설해 일부 자율규제 기능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닥사는 주요 원화거래소들이 만든 민간 자율규제 기구로 거래 지원 모범 사례 등 공통 기준을 운영하고 있지만, 법률에 설립 근거를 둔 조직은 아닙니다. 반면 법정협회는 법에 따라 일정한 규제 권한을 부여하고 가상자산사업자의 가입을 의무화할 수 있어, 지금보다 자율규제의 강제력과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법정협회는 설립과 권한이 법률에 근거하기 때문에 일정한 규제 행위를 할 법적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며 "인가받은 사업자의 가입까지 강제할 수 있어 보다 효과적인 시장 자율규제가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협회의 상장·상폐 권한의 범위입니다. 시장 전체를 통과하는 공통 기준을 만드는 것과 특정 개별 가상자산의 상장과 상폐를 판단하는 것은 법적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태림 AXIS Law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는 "공통 기준 제정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범을 만드는 기능인 반면 개별 상장·상폐 판단은 특정 발행사의 권리와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자본시장법도 한국거래소가 상장 규정을 만들고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하면서, 개별 상장·상장폐지 판단은 거래소가 책임지는 구조"라며 "법정협회도 공통 기준 제정과 심사 기준 해석·가이드 제시까지 맡고 개별 종목의 최종 판단은 거래소에 남겨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시장 경쟁 측면에서도 거래소별 판단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거래소가 사업 전략과 자체 심사에 따라 취급 자산을 선택해야 서비스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가상자산 자율규제기구인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가 개별 가상자산 심사까지 관여하고 있습니다. 김효봉 변호사는 "코인 하나를 심사하는 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만큼 절차가 느리고 거래소별 취급 자산의 차별성도 줄어든다"며 "개별 거래 지원 여부는 거래소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 시장 경쟁력과 책임 귀속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상장·상폐 권한은 결국 책임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현재는 거래소가 거래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만큼 발행사와 분쟁이 생기면 거래소가 당사자가 됩니다. 그러나 법정협회의 결정에 거래소가 사실상 구속된다면 결정 주체와 책임 주체가 나뉠 수 있습니다.
김태림 변호사는 "결정하는 자가 책임진다는 원칙으로 설계해야 한다. 개별 상장·상폐 판단 권한을 협회에 부여한다면 절차적 통제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라며 "사전 통지와 의견 제출, 결정 사유 공개, 이의신청·재심 등 불복 절차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법정협회의 권한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자율규제의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기존 닥사는 업계가 만든 자율규제 창구였는데 새로운 협회가 당국 주도로 운영된다면 업계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결국 어디에서 실질적 힘을 가지고 가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연주 기자 kiteju10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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