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정부가 '대국민 소통' 카드를 꺼내 든 건 역대 대통령 모두의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승부수가 모두 통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성 없는 사과와 '불통'의 모습은 추락의 속도만 높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솔직한 언어와 국정 철학에 대한 소신으로 국민을 설득하려는 자세는 반전 카드가 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대체 불가 대한민국'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론 돌린 '반전 승부수'
17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지난주 프랑스 순방에서부터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등 외교 일정이 빡빡했던 만큼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접견 일정을 제외하고는 메시지 준비에 나섰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30일·100일·신년·1주년 기자회견과 달리 특별한 테마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집권 1년 3개월을 맞아 국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국정 지지율이 연일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련한 기자회견입니다. 정권의 위기 속에서 꺼내 든 반전 카드인 셈입니다.
역대 정부에서 비슷한 흐름이 이어져왔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씨의 사례를 종합해 봐도 기자회견이라는 '승부수'가 반드시 필승 카드로 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소통이라는 승부수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회견에서 보인 태도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위기 속에서 꺼내 든 대국민 회견을 통해 반전 모색에 성공한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뿐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측근 비리와 대선자금 문제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2003년 10월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재신임에 대한 의견은 과반이었습니다. 또 일각의 비판에 "야당 마음에 안 들면 코드 인사입니까"라고 되물으며 자신의 소신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내 지지율은 W 자를 그리며 위기와 반등을 반복했는데요. 반등 시기의 변화를 보면 2007년 1월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직후에는 대국민 담화에서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두 담화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모두 반등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위기를 맞았던 이 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대운하 사업'과 관련해서도 임기 내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국민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여론을 거스르지 않고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또 중도·실용 노선과 친서민 정책으로 국정 운영 기조를 전환하며 지지층 확장에 나섰습니다.
즉 사과가 필요할 땐 진솔한 사과를, 여론의 반대가 거세질 땐 포기를, 반드시 필요한 개혁엔 '소신'을 밝힌 대국민 소통은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필승 카드 아냐…'역풍→레임덕' 사례도
대통령의 역대 기자회견이 성공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레임덕(조기 권력 누수)을 앞당기는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4일 만에 연 대국민담화에서 사과하고 해양경찰청 해체 방안을 발표했지만 비판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뒤늦은 사과일 뿐 아니라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당시 대국민 기자회견 대신 특정 언론인과의 인터뷰를 가지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추측성 기사'라며 "허황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아지던 시기에 '여론전'에 나선 건데요. 하지만 당시 인터뷰는 오히려 반성 없는 모습으로 탄핵 여론을 더 부추겼습니다.
윤석열씨는 '몰락'의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부각되던 당시 <KBS> 신년 대담(2024년)에서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박절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명태균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는데요. 오히려 '정치 선동'이라고 반박하면서 역풍을 맞았습니다. 이후 윤석열정부는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른바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등으로 인해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에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부동산 문제에 대해 기존 기조대로 강력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냈고, 오히려 지지율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대통령 역시 이번 기자회견이 지지율의 '분수령'이 될 전망인데요.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이번 기자회견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밝힐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임 개헌과 공소 취소 등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미 대통령이 밝혀야 할 현안은 명확한 만큼 '표현의 방식'에 무게를 두고 고심하는 분위기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