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연말 은행장 인선을 앞두고 금융지주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를 사후 점검하라고 지시하면서 뒷북 감독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올해 초에도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을 앞두고 지배구조 개선을 주문했지만, 제도 개편이 이뤄지지 않은 채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당국의 경고가 무색해진 바 있습니다.
금감원장, 경영승계 절차 사후 검증 지시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부원장 회의에서 금융지주 자회사 CEO 경영승계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인하라고 관련 부서에 지시했습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경영승계 절차의 문제점을 재차 언급하면서 자회사 CEO 선임이 마무리되면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 취지와 모범 관행에 부합하게 인선이 이뤄졌는지 확인하도록 주문했습니다.
금융지주 회장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하거나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문제를 살펴보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원장이 금융지주 경영승계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23일에는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특정 계파나 친소 관계가 아닌 능력에 기반해 자회사 CEO를 선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감원이 금융지주 자회사 인선 과정에 대해 거듭 경고하고 있지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 개편은 지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 관행과 관련해 '부패한 이너서클' 문제를 지적하자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지난 1월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CEO 선임 절차의 공정성, 이사회 독립성, 성과보수 체계 등을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이 원장 역시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참호 구축'과 이사회의 독립성 부족을 문제 삼았습니다. 당국은 3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고 금융지주 회장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당시에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이전에 금융지주들이 개선 방향을 선제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주총 전까지 제도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고 주요 금융지주들은 기존 절차에 따라 회장 연임 안건을 처리했습니다.
금감원은 올해 초 회장 인선과 달리 연말 자회사 CEO 인선에서는 승계 절차를 적극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연말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은행장의 임기가 만료됩니다. 각 금융지주는 후보군 평가와 최종 후보 추천 등을 거쳐 차기 은행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다만 일부 금융지주에서는 자회사 CEO 인선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인선이 상당 부분 진행되거나 끝난 상황에서 사후 점검이 실제 인사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인선이 끝난 뒤 절차상 문제점이 확인되더라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은행장 인선도 사후 점검 의존
금융사 지배구조법은 임추위 구성과 운영 등 기본적인 지배구조 요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금융지주 회장이 자회사 CEO 후보 선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당국이 강조하는 지배구조 모범 관행도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준수하도록 권고하는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경영승계 절차를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 만큼 모범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금감원은 모범 관행 이행 여부를 검사와 경영실태평가 등에 반영해 개선을 유도할 수 있지만, 이는 법령 위반에 따른 제재와는 다르다"면서 "단순히 후보 검증 기간이 짧거나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부족했다는 평가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가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법 개정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금융지주 회장 연임 요건 강화와 이사회 독립성 확보 등을 담은 개정안들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입법 절차는 지지 부진합니다. 금융위는 정부 차원의 개선안을 마무리하고 있는 상태이며, 당정 협의를 추진하기도 전입니다.
제도 개편이 지연되면서 당국은 금융지주에 자율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금융지주들은 금감원의 잇따른 지적에 따라 은행 임추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금융지주사들은 은행 임추위에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은행장 후보 검증과 평가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을 확대하고 나섰습니다.
다만 은행 임추위의 권한이 강화됐다고 금융지주 회장의 인사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축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종 후보 선정 과정에서는 여전히 지주사 추천위원회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이 당국 지적을 의식해 임추위 권한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 인사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선 때마다 구도 경고해야 하는 금감원으로서도 관치 금융 논란 등을 의식해야 해 난처한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찬진(왼쪽에서 여섯번째) 금융감독원장이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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