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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어때? 꿀맛이야. -한성대입구역 꿀맛식당
대학가
2015-11-19 18:41:16 2015-11-19 18:41:16
요즘 인터넷에 “경기도민은 인생의 반을 지하철에서 보낸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돈다. 기나긴 통학 여정 중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구경하다가 본 내용이다. 인생의 반이라는 말이 터무니없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확인하니, 집을 나선 지 꽤 됐다. ‘좋았어, 이제 곧 도착이야.’ 하며 유리문 너머에 쓰여 있는 역 이름을 확인하려 애썼다. 목 늘이며 고생하지 말라는 듯,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한성대입구, 삼선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정신없는 환승역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동대문역, 그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내리는 혜화역을 지나면, 항상 고만고만한 느낌으로 적당히, 또는 그보다는 덜 시끄러운 한성대입구역 문이 열린다. 한산해 보이는 그곳이 궁금해 ‘#한성대 맛집’을 타고 공강 시간에 구경을 가기도 하고 몇 번 발걸음을 하다 보니, 한산하게 느껴지는 분위기 위에 얹어진 풍경들이 보였다. 성북천을 끼고 있는 이곳에서는 주말이면 지역주민과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플리마켓(flea market: 벼룩시장)이나 축제가 종종 열린다. 한성대입구역의 3년 된 디저트 샵 ‘달디’에서 입수한 동네지도에 따르면, 이 역 근처에는 최근 몇 년 새 새로이 들어선 독립서적 전문 서점과 예술 공방, 밥집과 찻집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여느 시장 골목 같은, 회색 콘크리트가 곳곳에 칠해진 이 거리에서는 왠지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드는 재기발랄한 간판들 여럿이 눈에 띈다. 
 
“느릿느릿 여유롭게,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동네와 골목으로 떠나보세요.
바쁜 일상 속에 짧지만 달콤한 시간을 선물하세요.“
(출처: 스위트 스튜디오 달디의 ‘주관적인 동네지도 vol.3) 
 
점심 배꼽시계가 땡 하고 울리기 전 부리나케 두 개의 수업을 다 들은 길음역의 대학생과(이하 길으미) 해가 떨어졌을 무렵 수업을 시작하는 돈암역의 두 대학생(이하 돈아미)이 만났다. 평소 인스타그램으로 새롭고 신기해 보이는 곳을 찾아내 꼭 찾아가고야 마는 길으미는, 오늘 돈아미와 한성대입구역 꿀맛식당에 간다. 한 번 들으면 까먹지 않을 만한 귀여운 이름이다. 그러나 길으미와 돈아미는 자신들의 ‘길치 스피릿’이 행여나 꿀맛 나는 음식을 판다는 그곳에 당도하는 걸 지체시킬까 지도 앱을 손에서 놓지 않고 나침반 기능까지 사용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꿀맛식당은 6번 출구만 제대로 찾으면 쭉 직진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있다. 돈아미를 일찌감치 불러낸 길으미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돈아미: 그 집 어때? 맛있어?
길으미: 꿀맛이야. 
 
 
사진/바람아시아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걷다 보면, 이러한 외관의 꿀맛식당을 찾을 수 있다. 가까운 골목에서 두 길치 친구는 이 식당을 찾지 못할까 봐 한 명은 오른쪽을, 나머지 한 명은 왼쪽을 줄곧 응시하며 사이좋게 걸어온다. ‘간판이 안 커서 못 찾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길치라 애먹은 건 아닌 것 같아.’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멋쩍어 이런 터무니없는 농담을 늘어놓으며 꿀맛식당에 입성하는 길으미와 돈아미다.
 
사진/바람아시아
 
길으미: 돈아미야 뭐 먹을래?
돈아미: 음….
길으미: 별로 당기는 게 없어?
돈아미: 아니, 그냥 다 시키고 싶어.
길으미: ……. 
 
적어도 먹는 문제에서는, 길으미가 돈아미에게 잔소리를 하는 편이었다. 과자로 끼니 때우지 말고 밥 챙겨 먹어라, 그러나 또 아프면 어쩌느냐, 엄마처럼 걱정을 늘어놓던 길으미에게 얼마 전부터 돈아미도 똑같이 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받는다고 첫 끼를 떡볶이로 때우려 하면 어떡해? 백반 먹자, 백반.” 그러나 오늘은 <대.동.맛지도>에 출연하는 날이라 그런지 텔레파시가 통한다. 우리의 선택은 파스타. ‘토마토미트’와 ‘버섯크림’, 그리고 느끼함을 날려줄 ‘레몬네이드’를 시키고 가게 안을 둘러본다. 네 개 남짓의 식탁이 있는 꿀맛식당은 이름에서 느껴졌던 것처럼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크기다. ‘우리도 햇빛 드는 데서 먹고 싶어.’ 라며 큰 식탁을 바라보던 둘은 이내 스탠드가 켜진 2인용 식탁에 익숙해지고 지난 며칠 간의 회포를 푼다. 다른 테이블도 마찬가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은 일본어를 섞어 쓰며 유쾌한 목소리로 메뉴를 고르고, ‘볕이 드는 부러운 식탁’에 앉은 사람들과 그 옆에 앉은 엄마와 아기도 까르르 웃으며 꿀맛식당에서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토마토 미트 나왔습니다.”
돈아미: (파스타를 신명 나게 비비며) 사진 찍었지? 
 
사진/바람아시아
 
“버섯 크림도 나왔습니다.”
길으미: 사장님! 그거 여기서 시킨 거예요! 
 
돈아미와 길으미의 표정이 밝아진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 상당히 먹음직스럽다. 아직 입에 들어가기 전이지만 언뜻 보기에도 ‘토마토 미트’에는 토마토와 고기와 올리브, 올리브유가 부족함 없이 둘러져 있다. 돈아미가 포크와 숟가락을 양손에 들고 얼른 돌돌 말아서 입에다 넣는다. 조금 전 학교 총장의 횡포를 말할 때 패였던 미간 주름을 토마토 미트가 다리고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사뭇 진지하게 맛 평가를 한다. 토마토의 짭짤함과 고기의 부드러움이 더해져 입맛에 아주 잘 맞는 모양이다. 
 
길으미: 어때, 맛있어?
돈아미: 하….
길으미: 맛이 없는 거야?
돈아미: 꿀맛. 
 
길으미도 더는 기다리지 않고 ‘버섯 크림’을 맛보기로 한다. 넉넉한 크림과 버섯이 면 사이사이 소복이 자리 잡고 있다. 길으미는 돈아미처럼 양손을 써 돌돌 말기보다는, 더 급했는지 포크를 숟가락처럼 쓰며 면을 한 번 크게 푹 떠먹는다. 길으미의 일주일 중 비교적 여유로운 화요일이지만, 부담스러운 시간표를 자랑하는 월요일과 수요일 사이에 끼여 역시 패여 있던 미간 주름이 펴진다. 그러나 눈을 너무 치켜뜬 탓인지 이마 주름이 생긴다. 전체적으로 삼삼한 맛에 소스에서는 우유의 고소함이 많이 느껴지고, 버섯도 싱싱하니 아주 맛있다. 
 
돈아미: 그건?
길으미: 후….
돈아미: 그건 맛이 없는 거야?
길으미: 꿀맛.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도 얘기하는 건 포기할 수 없다는 듯한 다정다감한 두 친구가 식사를 끝냈다. 사실, 파스타의 양이 꽤 많아 돈아미는 소스와 토핑을 많이 남기고 길으미는 면을 많이 남긴 채 쉬는 시간이 한 차례 있었다. 하지만 버섯크림의 면을 토마토 미트로 옮겨 ‘셀프 로제파스타’ 제조에 성공한 돈아미의 기지로 그릇을 싹싹 비웠다. 하나 시킨 레몬네이드도 몇 번 나눠 마시니 느끼함도 가신다. 현금으로 계산했더니 500원도 깎아서 한층 더 상큼하게 골목으로 나선다. 
 
길으미와 돈아미는 다음엔 쌀과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을 먹으러 꿀맛식당에 다시 오자고 약속한다. 돈아미는 한성대입구역에 꿀맛식당같이 새롭게 들어서는 가게들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한다. 길으미도 처음엔 이 역에 내리는 학생이 아닌지라 지하에서 올라와 볼 생각도 안 했지만, 요즘 계속해서 들려오는 성북구 지역축제 소식과 함께 SNS에서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는 장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한다. 홍대나 건대처럼 북적거리는 곳도 좋지만, 골목골목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담긴 곳을 좋아하는 길으미는 이제 디저트 집을 읊는다. 아마 ‘21세기 여성 명언사전’이 있다면 비공식적으로 1위에 오른다고 다툴지도 모르는,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 ‘맛있게 먹으면 0kcal다.’ 라는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둘은 길을 나선다. 아침부터 이미 통학에 지쳐버린 몸이 꿀맛 같은 음식을 먹고 힘이 나는 듯하다.
 
 
서민주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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