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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안…정부, 부실지원 책임론엔 '모르쇠'
뭉뚱그려 5~8조 자본확충안 내놔…임종룡 "해명할 일 아니다"
2016-06-08 17:05:30 2016-06-08 17:05:30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정부가 발표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안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허술한 대책이라는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부실기업 지원과 구조조정 실기에 대한 '정부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8일 정부가 발표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에 따르면 기업의 수요 예측도 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여신을 제공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임금삭감 및 직원감축 등 강력한 자구책을 즉시 단행해야 한다.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을 적시에 진행하지 않은 책임을 먼저 진 후에야 자금확충을 진행한다는 금융당국의 원칙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은·수은은 내년까지 임원 임금을 5% 삭감하고 전직원 임금 상승분을 반납할 계획이다. 아울러 현 인력의 5~10%를 감원하고 부행장급 경영진도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산은의 경우 현 지점 중 8개소를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자구안도 담았다.
 
정부는 두 국책은행의 자구 노력이 이행된다는 전제하에 한국은행 대출 10조원과 기업은행 대출 1조원, 수출입은행에 대한 직접 현물출자 1조원 등 총 12조원의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유일호 (가운데)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업구조
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안방안 합동브리핑’에서 참석해 브리핑하고 있다. 이날 합동브리
핑에는 이기권(왼쪽부터)고용노동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유 부총리,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
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이처럼 금융당국의 요구대로 두 국책은행이 나름의 자구안을 내놨지만, 이를 뒷받침 해야할 정부 구조조정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은과 수은의 재정 상황과 처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계획안에 구조조정 상황이 악화될 경우 5조~8조원 수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뭉뚱그려서 명시해놨다.
 
퍼주기식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과 수은은 같은 국책은행이지만 법인이 다른 개별 공기업"이라며 "각각에 맞는 자본확충 계획안이 나와야지 그걸 묶어서 발표하면 재원이 어디로 얼마나, 왜 투입되는지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은 인력 계획을 놓고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계획안에 2021년까지 현 정원의 10%를 감원한다는 계획과 구조조정 인력을 지속해서 확대하겠다는 상반되는 내용이 동시에 실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은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최고의 구조조정 전문 집단이다"라며 "인력을 줄인다는 것은 군살을 뺀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한은이 대출해 준 10조원이 회수되지 못했을 경우의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정부는 각 부처가 다같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되풀이 할 뿐, 구체적인 언급은 삼가고 있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쇄신안이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실제로 이번 자구계획안에는 "대주주와 경영진, 채권은행 등 이해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에 기반한 자본확충을 통해 국민부담을 최소화한다"고만 기재돼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까지 산업은행의 관리 부실의 주요 대상이 됐던 대우조선 지분 12.2%(현재 8.5%로 변경)를 보유한 2대 주주였다. 지난 2010년 당시 국책은행들이 해운 조선업에 대한 우려를 지속해서 제기했음도 금융당국이 이를 외면했던 전례도 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은 것은 국책은행과 금융위 모두의 책임"이라며 "모든 책임을 우리가 짊어지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8일 홍기택 전 산업은행회장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제기한 '구조조정 정부 책임론'에 관해서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최근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과 관련해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라고 언급했다.
 
이에 이날 기업 구조조정 브리핑에 참석한 유일호 부총리는 "무슨 일이든 절차에 어긋나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질 일이다"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절차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개인적으로 가졌던 이해에 대해 정부 당국에서 일일히 해명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치권 낙하산 인사에 관한 언급도 없었다. 김기식 더불어민주당의원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새롭게 임명된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인사 18명 중 12명이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권 출신 낙하산이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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