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이정모의 세상읽기)성주 참외 사드세요
2016-07-15 09:00:00 2016-07-15 09:26:36
지난 월요일의 일이다.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김천·구미 역에서 대구과학관으로 가는 차창으로 노란 참외 조형물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여기가 성주군요"라는 말이 나왔다. 참외가 성주에서만 나올 리는 없을 텐데 내 머리에는 '참외 하면 성주, 성주는 참외'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나 보다. 기사분은 "전국 팔도 어디에서도 성주 참외는 쉽게 구분해요. 먹어보면 돼요. 먹어서 맛있으면 그게 성주참외거든요"라고 약간 과장된 어투로 자랑을 하셨다. 그런데 기사분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요즘 참외들은 모두 맛있다. 그럴 만한 게 우리가 먹는 참외의 70퍼센트는 성주에서 생산된다.
 
참외가 이렇게 맛있게 되기까지는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참외는 원래 박이다. 박과 마찬가지로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박과 식물에는 멜론이 있다. 수박과 참외는 멜론의 변종이다. 놀랍게도 원산지는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지방이다. 이곳에서는 수박과 참외가 건기의 중요한 물 공급원이었다. 사막을 건널 때 반드시 필요한 과일(한해살이 식물의 열매이니 사실은 채소가 맞다)인 셈이다. 우리나라 참외는 삼국시대에 중국 화북지방을 통해 들어왔다. 성주는 기후가 고온건조한 편이고 토양은 물이 잘 빠지는 곳이니 참외 재배에 최적지다.
 
성주 참외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화제는 곧 칠곡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이야기로 옮겨갔다. 칠곡군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소식이 시골 노인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는 것이다. 시골 노인분들이 운동가를 크게 틀어놓고 집회를 하고 심지어 혈서를 썼다는 얘기도 들었다. 칠곡을 떠나서 대구에 정착한지 오래 된 기사분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지만 말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다른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는 북한의 핵탄두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어서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게 얘기해 놓고서 인구와 주요시설들이 제일 많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보호할 수 없는 곳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말했다.
 
기사분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어디든 있어야 하지만 그게 왜 내 고향이어야 하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야기가 진척되면 서로 불쾌해질 것 같아서 칠곡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까지만 서로 합의하고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참 세상 일 알 수 없다. 월요일에는 칠곡을 걱정했는데 수요일에는 참외의 고장 성주를 걱정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부는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영향평가는 생략하고 국회비준 절차도 필요없다고 했다. 누가 반대한다고 정책을 바꾸거나 국민이 화를 낸다고 사과할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1야당의 대표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고 혹시 자기 지역구에 사드가 배치될까 노심초사하던 대구 경북 출신의 여당 국회의원들도 이제는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성주 군수의 입장이다. 수요일 저녁 성주 군수는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로는 성주에서는 사드를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도 선정 기준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레이더 전자파의 진실을 홍보하고, 국책사업 지원과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줄 것을 요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 속내를 보였다. 아마 정부는 커다란 경제적 인센티브를 성주에 줄 것이다. 많은 군민들은 그것을 지역구 국회의원과 군수, 그리고 대통령의 덕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은 곧 사그러질 것이다. 뭐, 이게 뭐가 문제이겠는가.
 
문제는 성주 참외의 운명이다. 실컷 여당만 지지하고 또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세월호 국정조사 때 유족들을 모욕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을 70퍼센트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당선시키더니 꼴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성주 참외 사드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사드'를 '사드(THAAD)'로 바꿔서 조롱하기도 한다. 전자레인지의 전자파에 대한 온갖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또 성주 참외의 위험성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릴 것인가.
 
사드가 위험하면 성주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위험하다. 하지만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고 해서 성주 참외의 맛이 변하거나 참외가 위험식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주 참외 앞으로도 맛있게 먹자. '성주 참외 사드세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