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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으로 크레인 자격증 실기·영어 공부했다"
수급자들 "식비·교통비만 월 40만원…메마른 땅에 단비"
"수당지급 중단은 물 안주고 햇빛 가리면서 꽃 피우라는 격"
2016-10-23 15:39:17 2016-10-24 14:15:22
[뉴스토마토 조용훈기자]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이 시와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으로 중단됐다. 제대로 시행도 못 해본 상황에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직접적인 현금 지원이 구직활동이 아닌 개인적 활동에 사용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것이 정부의 반대 근거다. 과연 그럴까.
 
지난 2년간 총 180곳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는 이종현(29)씨. 이씨는 청년수당을 받은 다음날 고민 없이 크레인 운전기능사 실기 과정을 등록했다. 크레인 운전기능사 실기 수업은 하루 수업비만 50만원으로 이씨 같은 취업준비생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씨는 “필기는 독학으로 합격했는데, 실기는 현장에서 조작해보지 않으면 통과하기가 어렵다”며 “그동안 실기시험 동영상을 보고, 머리로 가상훈련을 한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수당을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은 마치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꽃이 피려면 땅도 있고, 물도 있고, 햇빛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청년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꽃을 피우라고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이종현(29)씨가 등록한 크레인 운전기능사 실기 수업 영수증(좌) 이씨를 비롯한 수강생들이 크레인 실기 수업을 받고 있다(우). 사진/이종현씨
 
대학교 시절을 포함해 취업에만 3년을 매달렸다는 양소현(26·여)씨는 청년수당을 받고 선뜻 사용하지 못했다. 양씨는 “그동안 살면서 청년수당 같은 복지 경험이 전혀 없었고, 혹시 나중에라도 서울시가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까 의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서울시에 몇 번이나 전화해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봤다고 말했다. 양씨는 청년수당을 식비나 교통비가 아닌 오로지 영어공부에만 사용했다. 계획서에 썼던 대로 토익학원 등록비와 수업 교재비로 청년수당 대부분을 사용하고, 시에 활동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도 양씨는 “정작 청년수당을 받고서 남의 돈을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며 “청년수당이 재지급되기 전에 빨리 취업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한 김한나(27·여)씨는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청년수당이 누구보다 절실했다”고 말한다. 김씨는 청년수당을 교통비와 영어공부에 주로 사용했다. 무용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전공과 무관한 곳으로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남들보다 취업 스펙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평소 취업준비 때문에 대학교나 가까운 도서관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는데, 한 달 차비만 10만원 이상씩 들어 부담이 많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수당이 중단됐을 땐 학원비를 벌기 위해 다시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슬펐고, 한편으로는 불안함과 막막함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청년들은 대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요즘 어린 친구들이 처음부터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목표로 하는지 예전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월3일 청년수당 신청자 이종현(29)씨 통장에 청년수당 50만원이 입급 됐다. 사진/이종현씨
 
또 다른 수급자 유성운(29)씨는 지난해까지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매일 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온 유씨는 “부모님께 돈을 받아 쓴다는 사실이 너무 죄송했다”며 “길어진 취업준비 기간으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고 털어놨다. 자취생인 그는 “식비랑 교통비만 따져도 한 달에 최소 4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청년수당은 자격증 시험 응시료와 평소 필요했던 서적을 사서 보는 데 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주변에 청년수당 정책이 단발성으로 끝나 아쉽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그런 친구들은 청년수당 중단 이후 대안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 청년수당을 두고 ‘퍼주기식 복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일정 기간 운영한 후에 판단해야 하는데, 일부에서 청년수당을 안 좋은 시각으로만 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답했다. 한편 현재 서울시 청년수당은 복지부의 직권취소 통보에 이어 시가 대법원에 직권취소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청년수당 지급 재개 여부는 향후 대법원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 8월21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을 최초 제안한 서울 청년정책네트워크 회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2회 서울청년의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조용훈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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