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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트럼프와 알파 수컷 침팬지
2016-11-10 14:03:42 2016-11-10 14:03:42
“도널드 트럼프의 행동은 여러 모로 수컷 침팬지와 그들의 지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9월 18일 침팬지 행동연구가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뭐,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흘려들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을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는 달리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구달 박사가 트럼프에게서 수컷 침팬지를 떠올린 까닭이 있다. 수컷 침팬지는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해 발을 구르고 손으로 땅을 치고 나뭇가지를 휘젓고 돌을 던지면서 위협한다. 수컷 침팬지는 이런 과시 행동을 통해서 지배자인 알파 수컷이 된다. 그리고 지배자로 오래 남기 위해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과시 행동을 더 활발하게 해야 한다. 대부분 허세다.
 
트럼프가 딱 이랬다. 그의 언행은 과격하고 도발적이었다. 8년이나 흑인 대통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시골의 저소득 저학력 백인 남성들은 또 다시 여성 대통령의 휘하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기꺼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트럼프를 알파 수컷으로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미국의 저소득 저학력 백인 남성들은 트럼프를 통해 자신도 위대해지기를 바랐다. 단순히 트럼프를 자신들의 알파 수컷으로 선택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국제 사회의 알파 수컷이 되고 싶어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잃었던 미국의 지위를 회복함으로써 자신이 세계 사회의 알파 수컷이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착각이다.
 
트럼프에게 표를 준 사람들은 트럼프가 자신의 일자리를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알파 수컷은 자비로운 지배자가 아니다. 알파 수컷이 이익을 취하듯이 트럼프도 지지자들의 기대를 미끼로 많은 이익을 취할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핑계로 현재 35퍼센트에 이르는 법인세를 15퍼센트로 낮추고 최상위층 세율을 40퍼센트에서 25퍼센트까지 대폭 내리겠다고 한다.
 
덕분에 서민 계층이 받게 되는 복지 혜택은 크게 줄게 된다. 하지만 연소득 2만 5천 달러 이하의 저소득층은 연방 소득세를 면제해주겠다는 말에 현혹되고 있다. 그들은 부자 감세가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따지지 못한다. 오바마 케어도 위기에 처했다.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당장 지출해야 할 의료보험비가 사라지는 것을 환영할 것이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을 색출해서 추방하고 오바마가 내린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취소할 것이다. 그리고 고령의 저소득층 백인 남성들은 또 여기에 열광할 것이다. 이제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지배하게 되었으니 트럼프는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다. 그는 진정한 알파 수컷이 되었다.
 
대통령에 오른 트럼프는 점잖아질까? 아니다. 한국과 일본에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철회하고 멕시코 국경에 담벼락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실천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과시 행동을 발굴할 것이다.
 
실제로 자기에게 이익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고 소란스러운 수컷을 알파 수컷으로 인정하는 일은 침팬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서도 가끔 나타난다. 왜 아니겠는가? 현생 인류와 침팬지는 DNA 염기쌍 가운데 98.8퍼센트를 공유하는데 말이다.
 
한국사회는 최근 패닉 상태다. 우리는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도대체 알파가 누구였는지조차 헷갈리고 있다. 어쩌면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도 지배자로서의 과시행동을 꾸준히 개발했다. 문화융성,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행한 온갖 허세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편찬사업도 거기에 속한다. 역사에서 실패의 교훈을 배워서 국가가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무작정 자부심을 느끼면서 마치 자기가 알파라는 착각에 빠지고 싶어 하는 비역사적인 계층을 한데 묶는 데 성공한 사업이다. 이것은 허세다. 역사교과서를 누가 저술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그 증거다. 저술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합리적인 토론을 견뎌낼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 당선자와 박근혜 대통령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우리는 침팬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침팬지와 다른 DNA를 1.2퍼센트 가지고 있다. 수컷 침팬지와 같은 과시행동이 영원히 통하는 게 아니다. 허세는 곧 들통난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알파 수컷의 지배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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