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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몸통' 빠진 금융권 채용비리
2017-11-02 16:48:09 2017-11-02 16:48:09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금융당국과 공공기관, 거래처 등의 자녀들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오늘(2일) 사퇴했다. 지난달 감사원의 금융감독원 감사에서 채용 비리가 드러나고, 국정감사에서 시중은행의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리에서 물러난 금융권 고위직 인사가 열 손가락을 채울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다. 채용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받은 이들이 옷을 벗는 동안,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인사청탁자'는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금감원 채용비리 사건의 경우 초반에는 청탁자의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었다. 감사원 조사에서도 당사자의 진술에 따르면 "아는 사람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채용비리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청탁자의 존재도 수면에 드러나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금감원 신입직원 공채 과정에서 지인의 자녀를 인사청탁했다는 의혹으로, 최근에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채용비리로 뜨거웠던 이번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불려가거나 질문을 받는 일은 없었다.
 
정무위원회 국회의원실에서는 "청탁 행위는 검찰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항이라 채용 비리를 저지른 기관에 국감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죄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이 같은 논리는 청탁자로 지목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변명거리가 되기도 했다.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우리 사회가 인사 청탁자에 대해서는 온정주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지인의 자녀가 다른 조직에 채용된 것인지 알아보는 정도는 '인지상정' 아니냐는 것이다. 청탁자들 역시 "합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지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한다.
 
채용 비리의 책임을 지고 고위직 인사가 줄줄이 옷을 벗고 있지만 '몸통'이 빠진채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4년 금감원이 사내 변호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임영호 전 국회의원 아들을 특혜 채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금감원 임원 2명이 옷을 벗었지만, 인사청탁자로 알려진 최수현 전 금감원장과 임 전 의원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납득할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조직 내외부에서도 누가 몸통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법원도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들은 범행에 의해 이익을 받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피고인들이 행위를 하게 한 사람은 따로 있으나 처벌할 수 없어 미완(未完)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금융권 채용비리에 대해 "일상화된 비리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라며 "채용비리 당사자와 연루된 사람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금융관료 선배라거나 주요 거래처라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 채용 압력을 넣는 '일상화된 비리'에 대해서도 엄밀한 수사가 필요하다. 근본적인 청탁 문화는 외면한채 겉에 드러난 책임만 묻는다면 앞으로의 채용비리 사건도 막을 수 없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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