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동아시아문명으로 읽는 기업)①삼성, '포유어'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2018-02-05 07:00:00 2018-02-05 07:00:00
‘세계제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13세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했던 이 고민은 오늘날 국가(글로벌 기업)가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어떻게 국정운영(기업경영)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 <대학>, <대학연의>, <중용>, <주역>, <심경> 등 동아시아 문명의 고전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의 철학과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국가나 기업의 구조처럼 거대한 제도가 아니라 ‘제왕의 수기치인(修己治人)’에서 답을 구한다. ‘세상을 경영하려면 먼저 자기를 닦고 타인과 소통하라’는 것이 동아시아 문명의 제왕학이 제시하는 세계화시대의 경영 해법이다. 동아시아 문명의 제왕학은 개인적인 수양을 군주(지도자)가 국정운영이나 기업경영에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기획연재는 군주제 시대의 제왕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세계시민이라면 누구나 귀담아들어 할 동아시아 문명의 사유를 통해 글로벌 경영에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초민족 공동체(Metaethnic community)가 등장하고 이런 삶의 조건 속에서 개인과 기업, 국가의 활로를 찾는 가운데 동아시아 문명의 사유와 실천은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편집자)

 
‘불선(不善)’ 움트는 시기의 삼성, 작은 불선도 엄격히
 
삼성리더십의 지금 단계는 기업의 생애주기에서 구(女+后)괘에 해당한다. 이는 ‘여성의 기상이 굳세지나 여성을 취하지 말라(女壯 勿用取女)’는 뜻으로 해석된다. 통속적으로 풀면 여성 대통령과 협상에 신중하라는 뜻이거나, 삼성리더십 내부에서 여성리더십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주역에서는 삼성이 처한 위치를 가장 유망한 기업에 불선(不善)이 막 움트는 시기로 본다. 그 불선이 아무리 작더라도 미리 조심하라는, 불선이 장차 커지게 생겼으니 작은 불선이라도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다.
 
동아시아 제왕학으로 본 삼성의 핵심과제는 창업군주가 아닌 수성군주의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다. 반도체와 핸드폰을 통해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의 관심은 이 비교우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 이 고민은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가 이미 13세기에 세계제국을 경영하며 직면했던 문제다. 그는 제위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말 위에서 세계제국을 만들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세상을 통치할 수는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고민했다.
 
<원사(元史)>에 따르면 쿠빌라이는 제위에 오르기 전인 1244~1251년 조벽(趙璧, 1220-1276)에게 <대학연의>를 교육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할아버지 칭기즈칸이나 아버지 툴루이가 창업군주로서 힘과 무력을 이용해 제국을 건설한 것과 달리 3세 수성군주는 힘의 우위로만 제국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창업군주에서 수성군주로 리더십을 전환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게 새로운 제국을 운영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삼성의 3세경영 리더십이 당면한 과제도 쿠빌라이의 고민과 같다.
 
사진/뉴스토마토
 
패러다임 전환 통한 제국 수성의 지혜
 
<대학연의>는 남송의 진덕수가 군자가 아닌 제왕의 입장에서 어떻게 세계제국을 운영해야 할지 고민하며 쓴 책이다. 진덕수는 글로벌 거버넌스 운영이라는 제도의 틀 속에서 제왕학(帝王學)의 리더십을 추구했다. 이 책은 남송의 이종(理宗)에게 진강됐지만 당대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쿠빌라이를 만나서 비로소 제국 운영의 기본서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동아시아 제왕학의 정수는 힘과 권력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덕에 의한 협치를 가르친다. 칭기즈칸 시대의 무력은 더이상 제국 운영에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이해관계자의 자발성에 기초한 협력을 통해 제국이 운영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게 쿠빌라이가 찾은 혜안이었다. 이것은 지금 삼성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1·2세가 자본이라는 힘과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추구하는 경영을 했다면 3세경영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받고 있다.
 
<대학연의>가 동아시아 제왕학으로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면 동태적 변화를 군주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전한시대의 경방(京房)과 당나라의 일행(一行)에 의해 완성된 ‘주역 벽괘설’이다. 제왕이라는 단어가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거부감을 불러오지만 이를 현대 실정에 맞게 공적가치를 추구하는 공공 거버넌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동아시아 제왕학은 서양 경영학과 다른 새로운 지혜를 제시해준다. 주역은 원래 64개 경우의 수가 병렬적으로 나열된다. 그중에 12개의 괘가 군주인 벽(人변 없는 僻)괘의 역할을 한다. 계절이 지나듯 주역도 이 벽괘를 중심으로 기업의 경영주기가 계절처럼 순환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각 계절에서도 3주기가 있는데, 이를테면 여름은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으로 나뉜다. 12개의 벽괘들은 군주괘를 중심으로 하되 독립적으로 오등작(五等爵)인 공(公), 후(侯), 경(卿), 대부(大夫)의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현대의 기업 경영에 맞춰 설명하면, 먼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의 기본 가치는 군주인 벽괘를 의미한다. 국내의 정부, 국회, 연구소, 금융, 언론 등 대외관계는 공(公)괘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의 계열사는 후(侯)괘며, 기업의 협력업체와 그 이해관계자인 경(卿)괘, 기업의 직원과 노조 등 내부관계를 대부(大夫)괘에 해당해 풀이한다. 동시에 기업의 네트워크와 거버넌스의 전체구조를 해당 기업이 직면한 경기순환의 계절에 따라 진단할 수도 있다. 기업 경영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기업도 글로벌 산업주기에 따라 경기 변동을 겪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1938년 3월22일 대구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창업했다. 삼성상회에서 설탕, 섬유, 무역업을 시작하며 사업기반을 다졌고, 삼성상회는 삼성물산으로 발전했다. 사진/뉴시스

이해관계자와의 '만남' 통한 공유가치 창출 요구
 
삼성의 벽괘에 해당하는 구괘는 말 그대로 ‘만남’이 기업경영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괘사(卦辭)는 CEO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주저하지 말고 만날 것을 권고한다. 이는 경영의 개방성을 다시 한번 주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야 모든 물품에 영향을 두루 미치고 경영이 빛나게 된다. 그러나 만남은 시대의 옳음을 따르고 어진 리더십이 어진 팔로워를 만나야 기업이 크게 뻗어 나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주이익 극대화에 대한 반성이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고 대안으로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가 활발히 논의됐다. 이렇듯 구괘는 만남은 이해관계자의 공유가치(Shared value)를 찾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늘 아래에서 바람이 일어나듯이 삼성은 기업의 활동과 메시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또 이 괘사는 정점을 지난 기업에서 불선(不善)이 아직은 미약하지만 점차 성장하는 기세를 의미한다. 이 불선으로 기업은 수선스러움이 있기 마련이고 불선이 막 움틀 때이므로 이때 가장 강하게 이런 기운을 막아야 한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삼성리더십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각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이 사태는 3세 승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에 자라나고 있는 삼성리더십에 대한 불신과 불선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삼성이 이 불선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이 위기가 수성리더십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삼성의 대외관계는 창업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환경이 우호적인 함(咸)괘다. 원래 이 괘사는 소년과 소녀가 애틋하게 마음을 다해 서로 지극히 감동한다는 것으로, 부드러운 것은 올라가고 강한 것은 내려와서 두 기운이 감응해 혼인을 한다는 의미다. 지금 글로벌 금융이나 글로벌 연구소,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2세경영 때보다 더 삼성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장기적인 글로벌 지속가능 거버넌스를 구축할 최적기다. 소용돌이치는 글로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호적인 투자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과 급변하는 기술혁신의 트렌드와 긴밀히 연계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있는 대학과 연구소들이 삼성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삼성이 이 네트워크에 주력하는 것이 앞으로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연계해서 월스트리트나 런던 금융시장의 자본이 지금 삼성에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보다 가장 우호적이다. 이 네트워크를 기업 거버넌스로 전환할 수 있다면 지속가능성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삼성은 수성리더십이지만 지속가능한 혁신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뉴시스
 
'전자' 이후의 미래 준비해야
 
삼성의 계열사 관리는 핵심사업의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정(鼎)괘다. 사물을 바꾸는 데는 세발솥만 한 것이 없다. 정은 새로움을 취하는 것이다. 솥은 음식을 익혀서 만민에게 먹일 뿐만 아니라 손님을 맞이할 때도 음식을 장만한다. 솥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므로 계열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자산업 다음의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이 정괘가 주는 기업운영의 메시지다. 스마트폰도 TV도 글로벌 시장 정체로 미래가 밝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신사업 발굴에 집중이 필요하다. 바이오와 사물인터넷(loT), 자동차 전장사업이 미래 먹거리에 투자되고 있는 것은 정괘의 합치하는 방향이다.
 
삼성의 협력업체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금의 흐름이 막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정(井)괘에 해당한다. 삼성처럼 글로벌 기업의 협력업체면 자금 사정이 양호할 것으로 추측되지만 두레박 끈이 샘물에 닿을 듯 말 듯한 곤경에 처해 있다. 샘물은 거의 메말라 버리고 두레박줄도 우물 밑까지 닿지 않는데, 그 물병도 작은 것이 삼성 협력업체들의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을을 바꿀 수는 있어도 우물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기업혁신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이 협력업체다. 삼성전자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선정한 강소협력사 가운데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26개 기업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796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3991억원에 비해 99.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주요 협력사의 3년간 연평균 영업이익 성장률도 42%에 달한다.
 
정괘를 고려할 때, 삼성리더십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협력사들이 우물에서 기업의 수익인 물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호혜적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우물이 부족하면 우물이 있는 곳을 따라 마을의 위치가 바뀐다. 이 괘사는 2010년 이후 삼성이 포용적 자본주의를 따라 노민권상(勞民勸相)의 가치를 받아들였고, 협력업체들에게 상생의 혜택과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기업생태계를 윤택하게 만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포터(M. Porter)가 2011년에 제기한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은 삼성과 협력기업의 관계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런 상생협력의 노력이 표면적이고 대외 홍보용에 지나지 말고 실질적으로 협력업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주역으로 풀어본 삼성. 사진/뉴스토마토
 
삼성의 직원들은 일과 가족의 양립이 가능한 노사문화가 중요해진다는 가인(家人)괘에 해당한다. 2세경영에서 직원들은 군대의 일사불란한 규율처럼 전체 조직을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그러나 3세경영은 가족중심의 문화를 선호한다. 이 괘사는 집안이 화평해지고 이로 말미암아 기업이 화평해지고 천지의 대의에 합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주 40시간 내 알아서 근무하는 일과 가족의 양립은 가인괘에 부합한다. 삼성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임직원 자율에 맡기는 자율출퇴근제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과 연구개발(R&D) 등 일부 직군에 한해 시범적으로 운영해 온 자율 출퇴근 제도를 해외 사업장을 포함한 전 직군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변화를 시작으로 삼성전기와 삼성SDI 등 전자계열사 등으로 자율 근무체제를 점진적으로 확산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만을 강조하던 창업 리더십에서 구성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수성 리더십은 삼성이 시대변화를 따라가는 작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제왕학으로 본 삼성의 글로벌 경영은 벽괘인 ‘만남’의 구괘에 의해 좌우된다. 물고기를 꾸러미에 싸안는‘포유어(包有魚)’가 가장 핵심가치다. 소비자를 안아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이 없으면 흉하겠지만 이 가치를 마음 깊이 머금고 간직, 즉 함장(含章)하면 자연히 밖으로 아름다움이 우러난다. 복록이 하늘로부터, 밖으로부터 오게 된다.
 
 
* 필자 소개 : 필자 임채원은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 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 20여개 중앙·주정부의 정책 어젠다를 공동 연구하는 '비교어젠다 프로젝트'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참여 중이다. 이번 기획은 필자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연구와 실천을 토대로 동아시아 문명의 가능성과 미래에 관해 <뉴스토마토>에 격주로 총 12회로 연재한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