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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신약 접근성 높여야"
더딘 급여화에 저소득층 애로…"안정성 고려한 신중한 접근 필요" 의견도
2018-08-20 16:09:55 2018-08-20 16:12:48
[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고가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판 및 급여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신속성을 더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행 위험분담제가 일부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에 도움이 됐지만 투명성과 형평성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기종 한국환자연합회 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가 신약의 신속한 환자 접근권 보장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헌법이 경제적 능력에 상관 없이 생명과 직결된 신약 접근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음에도,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 사는 환자들이 많다"며 "세월호 희생자들과 이들의 공통점은 살릴 수 있는데 못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질환을 앓는 환자 가운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치료제 접근성이 엇갈리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약가와 더딘 급여화에 돈이 있는 환자는 처방을 받고 돈 또는 실손보험이 없는 환자의 경우 약도 써보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은 식품의약처가 국내 시판을 허가한 이후 급여화되기 전까진 비급여 형태로 환자들에게 제공된다. 시판 이후 약을 사용할 순 있지만 급여화 전까지는 환자가 부담하는 가격이 높은 편이다. 저소득층에겐 치료제가 없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허가 이후 급여화까지 걸리는 시간도 환자에게 부담이다. 실제로 ALK 변이 양성 비소세포암 치료제 '젤코리'의 경우 독일은 허가부터 급여화까지 단 70일이 소요된 반면, 국내는 약 3년4개월(1218일)이 걸렸다. OCED 평균 245일을 크게 웃도는 기간이다.
 
안 대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지난 2001년 시판 허가 이후 약가 최종 고시까지 1년6개월이 걸렸는데 7년 무진행 생존율이 94%에 이르는 혁신적인 치료제"라며 "이처럼 저소득층 환자는 급여화가 절실한 만큼 관련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분담제(RSA)'로 대표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험분담제는 기업과 보험자가 신약 등재에 따른 위험(재정적 불확실성과 치료효과의 불확실성)을 분담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4년 1월 시행된 제도다. 대체 가능한 치료제가 없는 항암제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희귀질환치료제가 그 대상이다.
 
실제가격과 표시가격을 달리해 제약사 입장에선 그 차액을 환급받아 손해를 최소화하고 환자는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중적인 가격 구조에 따라 가격 체계 투명성 약화와 행정부담이 따르고, 제약사 입장에선 여전히 높은 표시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안 대표에 앞서 '위험분담제 시행 5년 그 성과와 한계'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배은영 경상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도 RSA가 고가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과거에 비해 향상시켰지만 이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1상 임상시험 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건부 허가제도를 비롯해 신속 건강보험 등재제도, 재난적 의료비 지원금의 인상(2000만~3000만원→5000만원), 신약허가 및 급여 전문인력 충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안 대표의 주장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최성철 암시민연대 대표 역시 "고가의 신약 출시 이후 운이 좋으면 급여화 목록에 포함돼 저렴하게 약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돈이 없어서 약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한한 건보재정 특성상 출시된 모든 신약을 급여화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환자가 운에 따라 살고 죽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신속성 만큼이나 환자 생존권과 직결되는 안정성을 위해 속도감에만 무게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두 가지 모두 환자를 살리는데 중요한 핵심 가치인 만큼 충분한 임상결과를 기반으로 한 신중한 접근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승진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1상 이상 후 조건부 허가제도 같은 경우 접근성은 강화되지만 안전성 검증에 취약할 수 있어 임상근거 확보가 선결돼야 한다"며 "글로벌 사례만 놓고 봐도 1·2상을 근거로 한 허가 의약품이 3상 근거 사례보다 부작용 확률이 높아 무조건 기준을 낮추는 것은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조세복지팀장 역시 "이 문제에서 신속성과 안정성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가치지만 임상 1상의 경우 독성 여부정도만 확인하는 수준이고, 1상 통과 이후 최종 승인에 이르는 의약품이 10% 수준인 만큼 안정성이란 가치를 포기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편, 이날 보건당국을 대표해 참석한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현재 보건당국도 항암제를 제외한 약제도 RSA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세부 기준 마련을 검토 중"이라며 "기준이 정립되면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가 신약의 신속한 환자 접근권 보장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토론을 나누고 있다. 사진/정기종 기자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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