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이야기)단식을 결의하며
입력 : 2018-12-19 08:00:00 수정 : 2018-12-19 08:00:00
밥을 굶는다고 세상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도 단식을 결의한다. 일정이 많아서 단식농성장에 계속 눌러 앉아 있지는 못하지만, 일정을 소화하면서 단식농성 대열에 참가하기로 했다. 얼마나 갈지도 모르는 단식이라서 불안하기도 하고, 집에 와 계신 노모와 식구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면서 해낼 수 있을까도 걱정이다. 식구들은 다른 방법은 없냐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단식은 가급적 하지 말자 주의다. 단식농성도 인플레가 심하게 되어 있어서 열흘이나 보름 정도 단식 한다고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어떤 압박도 되지 않는다. 한 달도 넘어서 병원에나 실려 가야 관심을 가져줄까? 그런데도 무모할 지도 모르는 단식농성을 결의한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에 올라간 파인텤의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해 겨울 초에 굴뚝을 올랐다. 아래서 쳐다보면 너무도 아득한, 그래서 하늘이 더 가까운 그곳 굴뚝에 겨우 폭 1미터 남짓한 곳에 비닐 천막을 치고 4계절을 다 지나고 다시 혹한의 겨울을 맞고 있다. 건강 상태가 좋을 리 없다. 그들이 하루 빨리 땅을 디딜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고 단식을 한다. 오는 12월24일이면 마(魔)의 408일이 된다.
 
지금은 파인텤 본사가 있는 목동 CBS 앞에서 오늘로 열흘째 단식농성 중인 차광호씨가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408일을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면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사회적인 압박에 의해서 스타케미칼의 대표였던 김세권씨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내려왔다. 신설 회사를 만들어서 고용을 승계하고, 노조의 활동을 보장하며, 단체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 약속을 믿고 굴뚝에서 내려왔고, 농성을 해제했다.
 
그렇지만 이름을 파인텤으로 바꾼 신설회사에 약속대로 출근을 한 뒤에 회사의 태도는 바뀌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조건의 회사 환경, 작업량도 없고, 겨우 최저임금을 면하는 수준의 임금만 주는 그런 상황은 모욕적인 것이었다. 결국 기업사냥꾼의 본색이 드러났던 것인데, 이때 사회적 합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사회적 합의는 사회적 압박에 못 견뎌서 마지못해서 응했던 결과일 뿐이고, 사회적 압박이 사라지고 나자 그 합의는 용도 폐기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2명의 노동자는 높디높은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촛불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에게는 가혹한 법과 제도, 그리고 판결이 있다. 합법적으로 노동3권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노동자는 걸핏하면 감옥에 가고,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당하지만, 사용주는 단체협상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해도 처벌이 너무 가볍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부당노동행위로 인해서 수많은 노동자와 심지어는 국가사회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어도 처벌되지 않거나 그 처벌이 너무도 미약하기만 하다.
 
기울어졌어도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굴뚝에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알아주지도 않으니 노동자들은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 그들의 곁이라도 지켜야 한다. 제발 408일을 넘기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5일간의 청와대에서 CBS까지의 오체투지로 이어졌고, 다시 단식농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굴뚝에서 다시 겨울을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런 마음이 모아지기를 바라는 심경에서다.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적 합의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마는 관행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
 
2011년 11월10일, 309일 만에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씨가 내려왔던 것 같은 그런 모습을 2018년에 서울 목동에서 다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사용자라도 합의는 지켜야만 한다는 분명한 사례 하나 만들고 싶다. 그들이 굴뚝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매일 밥 올려준 이들과 따뜻한 밥 나누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갖고 단식을 결의한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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