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의 재계시각)밀수된 3만대 쏘나타, 현대차 중국사업의 시작
입력 : 2019-03-11 00:00:00 수정 : 2019-03-11 00: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현대자동차가 중국시장을 노크했던 1990년대 초반, 중국의 자동차 수입관세는 220%나 되어 수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시기에 혈혈단신으로 현지에 들어가 초대 현대차 북경반사처 수석대표(지사장)를 지냈던 송성훈씨는 지난 2013년 발간한 자서전 ‘북경일기’에서 현대차의 중국시장 공략은 밀수한 ‘쏘나타’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1992년 8월24일 한중 수교가 됐지만, 현지 생산공장 없이 승용차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쏘나타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본사 수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물량이었다. 송 대표가 알아보니 한국 국내용 차량을 밀수로 들여오는 것이었다. 베이징 시내에도 쏘나타들이 굴러다니기 시작하더니 중국 사람들이 찾아와 그런 루트로 차를 공급해 달라고 했다.
 
문제는, 한국 내수용 차량은 납 성분이 없는 무연 휘발유를 연료를 사용해 엔진과 후처리 장치 등도 그에 맞춰 제작된데 반해, 중국은 아직 유연 휘발유였고 불순물이 많았다. 이를 그대로 사용하면 자동차가 금방 망가진다. 현대차가 정식으로 수출한 차량이 아니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았다. 과거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자사 트럭에 대한 소비자들의 항의를 무시했다가 시장에서 퇴출당했던 경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수 쏘나타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주 통로는 산둥성 룽청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송 지사장에게 A/S부품 대리점과 서비스 공장을 만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송 지사장이 직접 현장에 가보니 빈 땅마다 쏘나타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막 도착한 차들은 며칠 후면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고 했다. 작은 어선들도 쏘나타 밀수에 동원되어 공해상으로 나가 한국에서 온 큰 배에서 5대 정도 받아 싣고 왔다. 심지어 칭다오 항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러시아 군함이 정박해 있었는데, 함포까지 달린 군함 갑판에도 쏘나타가 가득 차 있었다. 수입업자가 군함을 통째로 빌려서 그 많은 차들을 싣고 왔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8년 11월18일 ‘2008 광저우 모터쇼’에서 중국형 NF쏘나타 ‘링샹’을 최초로 공개했다. 사진/뉴시스
 
어떻게 밀수가 공공연히 이뤄질 수 있을까 물어보니,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밀수로 압수한 물건은 세관에 의해 공매로 넘겨지고, 공매가격은 물건 값의 50% 정도의 벌금이 붙는다. 일반적인 공매품이라면 이정도 벌금을 매기면 처분이 안된다. 그러나 자동차는 달랐다. 정식 수입하면 220%의 세금에 기타 다양한 부가 세금까지 붙는데 공매로 사면 찻값의 50%만 내면 되기 때문에 사실상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또 당시는 외국기업이나 그 기업 주재원이 자기가 사용할 목적으로 자동차를 수입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수입해 모든 세금을 내고도 5년 안에 중국인에 대한 양도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매 절차로 들어온 밀수 외국차는 이런 법적 문제에서도 완전히 개방됐다. 중국 내국인이 자동차를 수입해기 위해서는 자동차 가격 정도의 수입 허가증이 필요한데, 이 또한 필요 없었다.
 
이러한 밀수는 한국과 중국에 걸친 특정 이너서클의 사람들만 할 수 있었다. 즉, 한국 자동차 대리점 세일즈맨들이 전문 업자에게 국내용으로 차를 판매하고 이 업자들이 서류를 조작해 중고차로 수출한다. 국내 수출입자는 수출 후 특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아 이익을 챙긴다. 그리고 이들 물량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데, 한국에서 자동차를 싣고 온 어선은 바로 세관에 가서 밀수차로 자동차를 압수 당해주고, 세관은 공매 절차를 취한다. 그러면 수입업자 물주는 공매로 받아서 소매상에게 넘기고 남은 수익금을 적당히 나눠 갖는다. 워낙 내부 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대차조차 도대체 얼마나 중국에 자사 자동차가 들어왔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한참 지난 후 여러 통계 수치를 비교해 보니 수 개월만에 대략 3만대 정도의 쏘나타가 이런 방식으로 중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산됐다.
 
쏘나타의 비정상적인 대량 유입은 현대차로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송 지사장은 현대차에 큰 도움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고 했다. 자동차도 많이 팔아 당장의 수익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현대차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더 중요한 기대 이상의 결과는 유입된 쏘나타를 위해 중국 전역에 지정 정비 공장들을 설립하고 부품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이후 현대차의 중국사업에 큰 기초가 되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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