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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쓱', 'Liiv' 탄생한 비맥락 시대…우리는 마그리트가 돼야 한다
25년차 전문가가 짚어주는 '브랜드 전략'…"낯설게 보는 힘이 중요"
브랜드; 짓다|민은정 지음|리더스북 펴냄
2019-03-22 06:01:00 2019-03-22 06:01: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 내내 울려 퍼졌던 슬로건은 '패션. 커넥티드.(Passion. Connected.)'였다. 두 단어, 구두점으로만 연결된 이 조합은 역대 올림픽 사상 손에 꼽을 만큼 과감하고 참신한 단어 선택이었다.
 
"'열정으로 하나가 되는 경험', 이 핵심 가치를 심플하고 임팩트 있게 풀어 낸 것이 공식 슬로건의 담긴 메시지였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 딱 분절된 두 단어로 맥락을 만들어 내는 슬로건이 지금 이 시대의 톤 앤 매너라 생각했다."
 
민은정 브랜드 버벌리스트는 신간 '브랜드; 짓다'에서 평창 슬로건 제작 배경에 대해 이 같이 설명한다. 디지털 매체가 인쇄 매체를 대체하고 '확장성'과 '유연성'이 중요해진 시대. 지난 25년 간 히트 브랜드의 산파 역할을 해온 그는 책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 네이밍과 스토리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처음 브랜드 버벌리스트로 활동하던 1994년엔 브랜딩이란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던 때였다. '홈플러스' 네이밍을 할 땐 외국 비디오로 대형 마트의 개념을 공부했고, '메가패스' 네이밍 프로젝트 땐 사전을 뒤져가며 초고속 인터넷망의 개념을 살폈다. 사라진 삐삐부터 블록체인을 적용한 서비스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혁신의 선봉에 서 있었다. 브랜드에 숨을 불어 넣으며 세상 모든 변화의 처음과 함께 해 왔다.
 
'브랜드; 짓다'. 사진/리더스북
 
하지만 지금은 개별적인 모든 것들이 나름의 의미를 품은 채 움직이는 시대다. 분절된 개체들은 서로 연결되고 융합하며 또 다른 의미를 창조해낸다. 모든 소비자들은 피동적 수용자가 아닌 능동적 인플루언서로 활동한다. 0과 1이 세상의 구성 단위가 돼 버린 이 디지털 세계에서 그는 "지나치게 맥락에 딱 들어맞는 언어는 소비자들이 재미있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SSG의 '쓱'은 기존의 틀을 완전히 파괴하면서 성공한 오늘날 대표적인 브랜드다. '훔치다'라는 부정적 동사 앞에 주로 쓰이던 이 부사는 기존 '쇼핑몰'이 정의하던 맥락과 관점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 파괴적인 발상은 오늘날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관심을 끌었다.
 
'비맥락 시대'의 브랜드 어법은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을 일컫는 신조어)' 기업들의 이미지 마저 탈피시키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금융은 곧 삶'이고 '어렵지 않다'는 가치를 '리브(Liiv)' 안에 담아낸다. 알파벳 '아이(i)'를 웃는 이모티콘처럼 활용한 이 브랜드로 기업은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간편함'을 은행의 최고 가치로 삼는 하나은행은 디지털 감성을 담은 '1큐(1Q)'로, '금융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는 신한은행은 솔루션이란 뭉툭한 단어를 갈아 '쏠(SOL)'로 플랫폼의 브랜드명을 바꿨다. 이 모든 교체 프로젝트를 맡았던 저자는 "4차 산업 혁명은 모든 비즈니스를 바탕부터 바꾸고 있다"며 "모든 소비자들이 인플루언서가 되고 이들의 블로그, SNS, 인터넷 게시판 활동이 브랜드 성패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 반전, 의외성. 이것이 지금 브랜드가 기억해야 할 주요 조건"이라고 짚어낸다.
 
지난 25년 동안 5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축적한 노하우와 비하인드도 재미나게 소개된다. '새로운 커피(New café)'의 어순을 바꿔 봉지 커피의 새 시대를 연 '카누(KANU)',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방방곡곡 즐겁게 달리는 열차 이미지를 담은 '누리로', 한국 고도성장의 표상이었던 옛 대우센터빌딩을 미디어아트식 열린 공간으로 재 탄생시킨 '서울스퀘어'.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처럼 저자는 일상을 낯설게 보려는 노력에서 이 네이밍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오늘날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낯설게 보는 힘이다. 세상에 나온 모든 브랜드의 일차적 목표는 주목을 받는 것이고, 주목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르다'라는 명제다. 지구상에 더 이상 새롭고 다른 것은 없지만 우리는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일상적 오브제를 맥락과 맞지 않는 배경에 배치해 시각적 충격을 준 르네 마그리트처럼. 익숙한 것을 낯선 시선으로 볼 때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낯설게 보기'가 잘 드러난 대표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사진/위키피디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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