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5x10 규칙
입력 : 2019-03-29 06:00:00 수정 : 2019-03-29 06:00:00
'대가리'는 동물의 머리를 뜻하는 표준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빈 머리'를 속되게 표현할 때 쓴다. '새대가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새가 멍청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난 이야기다. 제법 많은 새들이 도구를 사용한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8단계 문제를 해결한다. 웬만한 사람보다 현명하다. 물론 모든 새들이 이 정도로 똑똑한 건 아니다. 비둘기는 까마귀가 아는 규칙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 물체를 구별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기억한다. 검은머리박새는 수천 곳이 넘는 장소에 씨앗 같은 먹이를 숨기는데 6개월 후에도 그 장소를 기억하고 찾아낸다. 
 
새가 똑똑한 이유는 간단한 산수만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늑대와 사람은 체중이 대략 70kg 정도로 같다. 그런데 뇌의 크기는 크게 다르다. 늑대의 뇌는 200g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뇌는 1400g이나 된다. 사람이 늑대보다 확실히 똑똑한 이유다. 새는 어떨까? 메추라기는 몸무게가 85g이고 뇌는 겨우 0.73g이다. 1g도 안 된다. 하지만 메추라기의 체중을 늑대와 같은 70kg으로 보정하면 뇌는 무려 600g이나 된다. 늑대보다 세 배나 큰 셈이다. 가장 똑똑하다고 알려진 뉴칼레도니아는 몸무게가 220g이며 뇌는 7.5g이다. 몸무게를 사람과 같은 70kg이라고 하면 뇌는 무려 2390g이나 된다. 사람 뇌보다도 훨씬 큰 셈이다. 
 
뇌의 크기만으로 지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 즉 뉴런의 연결 수준과 밀도가 중요하다. 새의 뇌 뉴런 밀도는 영장류와 비슷하다. 새와 포유류의 뇌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 포유류의 뇌가 IBM이라면 새의 뇌는 애플이다. 두 컴퓨터의 연산처리 과정은 다르지만 출력되는 결과는 같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새의 뇌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그 결과는 같다. 이제 더 이상 '새대가리'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지는 말자.
 
새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수만 마리가 한 데 어울려 조화롭게 군무를 펼친다. 짝짓기를 위해 둥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암컷 앞에서 열정적인 춤을 춘다. 흉내지빠귀처럼 다른 새의 노래 소리를 흉내 내는 일은 흔하다. 심지어 회색개똥지빠귀, 구관조, 회색앵무는 사람의 말을 따라 하기도 한다. 이젠 새가 정말로 똑똑한지 물을 때가 아니다. 새가 왜 똑똑해졌는지 물어야 한다. 
 
새의 가장 큰 특징은 비행이다. 비행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새는 비행을 위해 몸을 많이 바꿔야 했다. 우선 뼛속을 비워 가볍게 했다. 턱뼈 대신 가벼운 부리가 있다. 하지만 여러 뼈를 융합해서 최소한의 강도를 확보했다. 내장도 바꾸었다. 허파는 최대한 키웠다. 몸의 5분의1을 차지한다. 기낭(공기주머니)을 장착해서 날숨 때도 세포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 대신 나머지 장기들은 간소화 했다. 간과 심장, 난소의 크기를 줄였다. 방광은 아예 없애버렸다. 
 
새는 비행을 위해 몸을 가볍게 하면서도 뇌는 최대한 크게 유지했다. 비행술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빽빽한 나무 사이를 쏜살 같이 날아다니기 위해서는 신경계와 운동계를 정교하게 조절해야 한다. 그렇다. 새들은 비행을 위해 똑똑해졌다. 그런데 새들이 비행을 하다가 죽는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야생 조류 비행 사망 사건은 숱하게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매년 10억 건 발생한다. 캐나다에서는 2500만 건 발생한다.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800만 마리의 야생 조류가 비행 중 죽는다. 하루에 2만 마리가 넘는다. 범인은 누구일까?
 
유리창이다. 또 대개 서식지를 가로질러 놓여 있는 도로의 투명방음벽이다. 새들은 유리를 피하지 못하고 충돌한다. 아니, 그 똑똑한 새들이 왜 이런 것들을 피하지 못할까? 투명하면서도 풍광을 반사하는 유리는 진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뇌가 적응하지 못했다.
 
유리벽이나 방음벽에 버드세이버(Bird Saver)라고 하는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 놓기도 한다. 새들이 스티커를 보고 무서워서 피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새들은 꼼짝도 않고 고정된 그림을 천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새들은 높이 5cm, 폭 10cm의 틈만 있으면 비행을 시도한다. 이것을 '5x10 규칙'이라고 한다. 건물 유리창과 투명방음벽에 이 간격 미만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표시하면 새들은 자신이 지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유리창을 회피하여 비행한다. 그리 어렵고 귀찮은 일은 아니다. 5x10 규칙을 기억하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나볏

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