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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있는 그대로 날 것의 사운드, 아마도이자람밴드①
음식으로 모여 음학 아닌 음악 하다…"신파 같은 건 싫어요"
2019-05-10 15:08:55 2019-05-10 15:24:0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아마도이자람밴드의 홍보 직원입니다. 멤버들이 두 곳의 장소를 추천해줬습니다. 한 곳은 이번 앨범을 위해 2년 간 작업한 합주실이고, 다른 한 곳은…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해보세요.”
 
“수산시장입니다.”
 
바다 내음이 이끄는 곳으로 향해야 했다. 갓 잡아 서울로 상경한 생선과 오징어, 게들이 펄떡이며 춤을 추는 곳. 이 얼토당토 않은 장소 제안에 잠시 웃음이 나서 말문이 막혔다. 핸드폰 너머로 대강의 이유가 들려왔다.
 
“2집을 준비하면서 합주실 아니면 주로 수산시장을 갔다는군요. 음악 아니면 음식이 밴드가 뭉치는 이유라고 합니다.”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이 장소에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7일 오후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멤버들(이자람<보컬>, 김정민<베이스>, 이민기<기타>, 김온유<드럼>)과 만날 수 있었다. 사람 냄새, 바다 냄새가 가득 나는 소매 시장을 이들과 잠시 거닐었다. 집게를 하늘 높이 들고 춤을 추는 대게를 보며 웃고, 생선들의 시세를 묻는 꼼꼼함이 능숙해 보였다.
 
아마도이자람밴드. 김정민(왼쪽부터), 이자람, 김온유, 이민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자람)기념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모여서 큰 게를 쪄 먹어요.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도 모여서 같이 먹었고, 회를 먹기도 하고요. 처음엔 호객행위가 좀 무섭기도 했는데,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젠 한 집을 딱 정해 놓고 거기로 직행하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민기)대부분이 그날의 시세를 맞춰 놓는 것 같더라고요. 가격보다 어항에 들어 있는 애들 크기 보고 결정하는 편이에요. 정민씨는 회는 잘 못먹지만 게는 좋아하고, 온유씨는 또 고향이 제주도라 맛을 아주 잘 알아요.”
 
“(온유)사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가끔 제주도에선 지인이 생으로 잡아다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좋은 부위는 팔지 않고 따로 떼어 놓는 경우가 있는데 광어가 도미보다 맛있는 경우도 봤어요.”
 
“(민기)그런 걸 먹다 보면 이제 입이 높아지는 거지.”
 
뮤지션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이들의 대화 주제는 휙휙 바뀌었다. 수산물 이야기는 고기 부위에 대한 이야기로, 또 TV에 나오는 야구 선수로, 다시 또 살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바다 내음이 코 끝에 정착해 익숙해질 무렵에서야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찬찬히 흘러 나왔다.
 
“(자람)음식을 먹을 때도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꺼내요. 각자가 갖고 있는 정보를 하나 둘 나열하면서요. 잡담이 90% 정도? 그리고 이제 합주실 가면 거기서부터 (음악)얘기를 시작하는 거죠. 하하”
 
아마도이자람밴드. 김정민(왼쪽부터), 이자람, 김온유, 이민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05년 이자람과 이민기를 주축으로 결성된 밴드는 밴드명 작법도 독특했다. 첫 공연 당시 “밴드이름이 뭐냐”는 한 스텝의 질문에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아닐까요?”라고 답했다가 ‘아마도 이자람 밴드’란 이름이 공식명으로 포스터에 나가게 됐다.
 
“(자람)그 후로 특이하고 좋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민기)밴드 이름을 주변에서도 재미있어 하세요. 그걸 보면 참 우리가 얼마나 재미가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요. 하하”
 
밴드의 모든 곡을 쓰는 프론트맨은 이자람이다. 밴드 활동 전부터 그는 소리꾼으로도 활동을 해왔다. 최연소 춘향가 8시간 완창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린 젊은 국악인이며 밴드 활동과 함께 뮤지컬 배우, 음악 감독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이민기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 전부터 이자람과 합을 맞춰왔고, 2016년과 2017년 다른 멤버 김정민과 김온유가 합류해 지금의 진영이 갖춰졌다. 이자람, 이민기와 다르게 뒤늦게 합류한 두 멤버는 정식으로 음악 기초 이론부터 배운 학도들이다.
 
“(온유)처음 이 밴드에 들어왔을 때 좋았던 건 ‘음악(音樂)’을 ‘음학(音學)’적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음악에 표현한다는 느낌이랄까.”
 
“(정민)각자가 꾸미려 하지 않고, 밴드 모두가 잘 서 있는 느낌이었지.”
 
아마도이자람밴드. 사진/유어썸머
 
뒤늦게 합류한 이들의 분석처럼 밴드는 구성을 최적에 맞춰 사운드를 낸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비어있으면서도 꽉 차 있는 느낌을 구현한다. 정갈하고 솔직한 사운드, 그리고 가사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수산시장을 장소로 선정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묻자 무릎을 탁 친다.
 
“(민기)저희는 신파 같은 걸 싫어하는 팀인 것 같아요. 오글거리거나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곡을 쓰려고 하지 않고, 곡이 품고 있는 선에서 감성이나 이성을 조율하려 하는 것 같아요.”
 
“(자람)나머지 두 멤버가 합류하면서 밸런스가 좋은 팀이 됐다고 저는 생각해요. 곡을 쓸 때는 뼈대만 들고 가는데 다른 멤버들이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주고, 또 그것을 밴드 스타일에 맞게 만들어줘요. 그런데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있는 그대로, 날 것의 느낌. 저희가 그럼 장소 잘 정한 게 맞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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