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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4성 장군 박찬주씨, 갑질 아니다
2019-11-18 06:00:00 2019-11-18 06:00:00
이강윤 언론인
전직 육군 대장 박찬주씨는 공관병 갑질로 악명 높다. 언론들이 실수했다. 박씨는 갑질을 한 게 아니다. 갑질이란 계약서 상 갑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부당 요구를 하는 걸 말한다. 이 때의 갑과 을은, 힘은 차이 나지만 적어도 사람이라는 점은 같다.
 
박찬주씨는 공관병이나 부하를 '사람'으로 본 게 아니라, 군대 내 비품 정도로 취급했다. 한 술 더 떠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공관병을 사람 이하로 취급하며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 박씨의 아내가 공관병을 사람으로 봤다면, 간이 맞지 않는다고 음식을 병사 얼굴에 던질 수 있겠는가. 공관병이 대장 가족들 끼니까지 챙기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박씨 아들은 자기 남녀 친구들을 국가 보안시설인 2군사령관 공관에 불러 파티를 벌였다. 제 또래인 공관병들로 하여금 시중들게 했다. 박씨가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고, 그 자식은 뭘 보고 자랐는지 짐작이 간다. 이 정도면 봉건시대 식읍(食邑)의 제후 수준이다. 박찬주씨는 아마 지금도 앙앙불락할 것이다. "선후배 별들이 다 그러는데 왜 나만 문제 삼나. 이건 정치탄압이야"라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인재 1호라고 추켜세우자 쾌재를 불렀겠지만, 그 쾌재는 하룻 밤을 넘기지 못했다.
 
군문(軍門)만 그런 게 아니다. 국회 검찰 등 국가기관은 물론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영역에 뿌리 깊다. 가족이 죄다 갑질로 악명 높은 대한항공 조씨 집안의 패악질을 국민들은 처참한 심정으로 목격했다. 고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도 박씨처럼 비서나 작업원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이 실정법 상 무슨 죄를 저촉했는지는 법률가들이 정할 일이지만,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죄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
 
요즘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대한민국 검사들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을 우습게 봐왔고, 같은 수사기관 종사자인 경찰은 50년 넘게 '따까리' 정도로 부렸다. 턱짓 하나로 오라가라 하고, 권한 남용해서 경찰을 몸종 정도로 여기는 검사도 더러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상명하복 구조와, 사람을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사고체계 때문이다. 그런 사고의 바탕에는 사람 깔보는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이 투철하다. 이제는 많이 줄였다고 생색 내는 국회의원 특권도 본질적으로는 박찬주 씨나 검경 관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될까. 박찬주씨나 대한항공 조씨 집안, 특권의식의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몇몇 검사나 일부 국회의원들의 '품성' 문제일까. 그저 몇몇 미꾸라지들의 일탈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 상명하복과 권위주의에 찌든 조직문화를 외면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모든 기관/조직에서 끈질기게 벌어지고 있는 갑질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누군가 문 열어주지 않으면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매일 아침저녁 각 기관/청사에서 목격된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이자 의전이라 생각한다. 이런 게 없어지지 않는 한, 이 나라는 봉건 신분제 국가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의전과 특권, 권한과 권위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너무 많다. GDP가 3만달러 아니라 10만달러가 된다 해도,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을 추방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경직된 의식과 조직문화로는 여지껏과는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당면 최대 문제는 상급자는 많지만, 리더는 드물다는 점이다. 상급자는 대접받고 권위 부리는 것에서 존재 이유를 찾는다. 리더는 조직문화를 구조적으로 바꾸고, 조직원 즉 사람의 가치를 극대화시킨다.
 
리더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이다. 몇 백 년간 이 나라를 짓눌러온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을 행정부에서부터 걷어내고, 국가 전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초석을 놓는다면, 문 대통령은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막 돈 문재인정부에 특별히 요청한다. 정부의 온 역량을 특권의식 해체에 집중해주시라. 촛불정부 최대 주주이자 유일한 실세인 시민들은 3년 전 이 정부에 엄숙하게 명령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개벽의 첫 날을 만들어달라"고. 최고는 계속 바뀌지만, 최초는 영원히 남아 신화가 된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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