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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과학창의재단의 비극
2020-06-15 06:00:00 2020-06-15 06:00:00
과학기술기본법 제30조는 “과학기술문화의 창달 및 창의적 인재육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교육부장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시책을 세우고 추진하도록 명하고 있다. 두 장관에게 주어진 구체적 사명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식 수준을 높이고 과학기술이 국민생활 및 사회전반에 널리 이용되며 국민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하 재단)은 바로 이런 목표에 따라 설립된 법인이다. 2020년 재단의 예산은 1000억이 넘는다. 재단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부처의 위탁사업이며, 재단 스스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재단이 만든 ‘한국과학창의재단 50년사’에 따르면, 재단의 기원은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후원회 설립취지문’이다. 1967년 병리학자 윤일선이 초대 위원장이 된 후, 후원회는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에 ‘새마을기술봉사단’으로 기여했고, 박정희의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수행할 핵심 기관으로 부상한다. 과학사학자 김근배는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정책을 과학이 정치에 종속화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재단은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박정희식 과학기술정책 패러다임의 틀 안에 놓여 있다. 박정희와 박근혜가 각종 비리와 도덕적 해이로 유명하듯이, 재단 또한 과학문화창달보다는 그런 쪽으로 더 유명하다.
 
2016년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김승환 이사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한다. 이사장 공모에는 정유라의 특혜 의혹과 직결된 이화여대 교수의 남편이 지원했는데, 그는 축산학과 교수이자 승마전문가였다. 승마전문가의 재단 이사장 선정은 불발되었지만, 박근혜는 그를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했다. 2018년엔 재단 간부 3명이 행사대행업체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것을 필두로, 2016년 이후 재단 이사장은 단 한번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지난 주에는 안성진 이사장 역시 건강악화를 이유로 사퇴했고, 사임 직후 과기정통부 차관 출신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당연하게도 재단은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결과에서 유일하게 5등급 낙제점을 받았다. 
 
이쯤 되면, 과학창의재단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진다. 과학기술문화의 창달을 담당해야 하는 기관이, 온갖 인사비리와 청탁으로  얼룩져 있는데, 도대체 과학기술문화를 무슨 수로 창달할 수 있을까. 과학대중화와 영재교육으로 상징되는, 50년도 넘은 개발도상국 시절의 박정희식 패러다임에 매몰된 재단의 철학 속에서, 한국 과학문화사업 또한 과학문화 확산은 커녕, 초등학생용 과학관 견학 프로그램으로 퇴색중이다. 재단의 뿌리깊은 비리와 부패는, 박정희식 과학대중화 사업을 원점에서 재고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한국식 과학대중화 사업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박정희는 과학을 자신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한국 과학기술계를 철저히 국가에 종속적인 체제로 안착시켰다. 바로 그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문화사업은 과학이 한국사회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조차 없이, 그저 식민지 시기 과학계몽의 연장선 상에서 추진되었을 뿐이다. 이공계 기피현상과 이공계 대학원의 공동화, 그리고 과학고 학생들조차 의대를 선호하는 현상은, 한국식 과학대중화가 지닌 구조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과학을 대중화하는 방식으로는, 한 사회 속에 과학이 스며들어, 해당 사회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지탱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만들 수 없다. 계몽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관료주의로 범벅이 된 한국 과학대중화의 슬픈 자화상은, 재단의 안이하고 구태의연한 각종 사업에서도 잘 드러난다. 재단의 과학문화사업은 유치하고 낡았다.
 
과학이 사회에 선사하는 미덕이 반드시 노벨상이나 천재 과학자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과학이 자연을 발견하는 방법 속에는, 공유주의와 보편주의, 권위에 대한 저항과 열린 토론의 미덕이 있고, 바로 그 미덕을 통해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제 과학문화사업은 과학영재 사업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민주적 시민을 위한 삶의 양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 마지막으로 남은 박정희식 낡은 패러다임을 깨고, 한국 사회가 과학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빠르게 옮겨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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