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나침반 '비전 2030'…현실은 '뒷걸음'
노무현의 큰 그림…국가 전략 집대성
미래 전략 제시에도 경제·복지 등 후퇴
2024-05-22 17:07:06 2024-05-22 18:36:39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지난 2006년 노무현정부에서 만든 '비전 2030'은 대한민국의 25년 뒤를 그리며 국가 전략을 집대성한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등 장기·구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경제·사회·문화를 망라한 밑그림을 설계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보고서 곳곳에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국가 철학과 국정 비전 등 고민과 혜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비전 2030' 보고서는 11년이 지난 후 문재인정부의 정책 나침반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청사진에서 한참이나 뒤처져 있습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경제 시름은 더욱 깊어졌고, 국민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혁신적이고 활력 있는 경제', '안전하고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안정되고 품격 있는 국가' 등은 대한민국에 아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최초' 정부 장기 계획서…미래 청사진 제시
 
'비전 2030' 보고서는 2005년 6월부터 60여명의 민간전문가와 당시 기획예산처 실무급 직원들로 구성된 합동작업단이 1년여 동안의 연구과정을 거쳐 2006년 8월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논의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작돼 '역동과 기회의 한국', '동반성장 비전과 전략'을 내놓았고 '비전 2030'으로 집대성됐습니다.
 
보고서는 '혁신적이고 활력 있는 경제', '안전하고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안정되고 품격 있는 국가'를 목표로 성장 동력 확충, 인적 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사회적 자본 확충, 능동적 세계화 등 5대 전략을 세웠습니다.
 
실행계획도 제도 혁신과제 26개와 선제적 투자과제 24개를 합한 50개로 만들었습니다. 제도 혁신안에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중소기업 지원체계 정비, 정년조정 및 임금피크제 확대, 학제 개편, 국민·직역 연금 개혁, 비정규직 대책, 사법제도 개혁 등이 포함됐습니다. 선제적 투자에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적극적 고용전략 추진,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 투자 확대, 보육서비스·방과후 활동 확대, 주거복지 확충, 국방개혁 등이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까지 들고 일어나며 보고서를 향해 "천국을 꿈꾼다", "환상이다" 등 온갖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재원 논란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대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현재의 20대와 30대는 세금 폭탄 선언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그럼에도 정치권 안팎에선 '비전 2030' 보고서를 두고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정부 장기 계획서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기에 보고서가 가진 가치는 인정했습니다. 그 당시 나온 미래 전략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국가가 돈을 어떻게 써서,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고 얘기한 계획서라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은 인정받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024년 현실은 '후퇴'…'비전 2030' 업그레이드 버전 필요 
  
그러나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비전2030'이 제시한 청사진과 간극이 큽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현상'에 서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고 고용의 질도, 복지서비스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제 불확실성은 커지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 등 나라 안팎의 내우외환 리스크는 더욱 확대됐습니다.
 
가령 '비전 2030' 보고서는 2005년 65%였던 건강보험 보장률이 청사진대로라면 2030년 85%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2022년 기준 65.7%에 불과한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17년 동안 고작 0.7%포인트 소폭 상승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비율도 2005년 5.1%에서 2030년 16%까지 내다봤지만, 2023년 기준 8.9%에 그쳤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교 기준인 15~64세 고용률 역시 2005년 63.7%에서 2030년 72%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난해 기준 69.2%에 머물렀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현재 대한민국 사회엔 '비전 2030'과 같은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미국은 물론 많은 선진국들이 체계적으로 미래 연구를 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미래 연구와 대비 측면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실제 영국은 다양한 분야의 미래 전망과 대비를 위해 1994년 '미래예측 프로그램'을 출범시켰고, 핀란드 정부는 4년마다 15년 후의 미래상에 대한 예측과 대응방안을 만들어 의회에 제출하고 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5월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분이 옳았다. 사회투자와 사회적자본, 혁신과 동반성장.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보편적 가치가 됐다"며 "그러나 여전히 미완이다. 이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라고 적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비전 203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필요한 때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2006년 5월1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리콴유 싱가포르 고문 장관 접견 모습.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