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오네가호수의 ‘3인조’와 일명 ‘악마’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③)
2023-11-20 06:00:00 2023-11-20 13:25:36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네가호수 위치.이미지=박성현
 
오네가호수를 찾는 사람들과 자연환경
 
야영장의 실내 숙소인 오두막은 예약 공간이 한정돼 있지만 야외 예약자는 숲속 아무데나 텐트만 치면 됐다. 숲길을 따라 몇 십 미터 걸어 들어가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씻는 곳은 따로 없어 호수의 물로 세면과 양치를 했다. 번번이 입 속으로 모래알이 들어오긴 했지만 매일 아침저녁 호수를 바라보며 양치질을 할 수 있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이웃 텐트들의 주인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커플남녀 네 명이었는데, 첫날 저녁 그들은 내가 씻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오네가호수는 아주 깨끗해요! 호수 물을 마시고 세수하고 목욕하면 돼요. 우리는 빨래도 했어요.” 아니, 그럼 빨래한 물을 마시는 셈이 아닌가! 호숫가 물이 끊임없이 씻겨나가니 맑기는 했지만 나는 직접 마시거나 빨래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관리동 겸 식당 안 모습. 야영장을 운영하는 가족과 여름철 동안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사진=박성현
 
통나무집 하나는 관리동 겸 식당 내지 부엌이었는데, 실내 숙소가 모자라 이곳의 간이침대들도 손님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야영객들은 스스로 음식을 준비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던 나는 머무는 내내 이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메뉴는 소박해서 아침에는 빵과 잼 또는 과자, 저녁에는 생선수프나 블리니(러시아식 팬케이크)가 반복적으로 제공됐다. 외딴 곳이라 모든 식료품은 배를 타고 나가 카르셰보 마을에서 공수해 오고, 물은 오네가호수에서 길어다가 사용한다. 결국 빨래한 물을 마신 셈이지만 끓여서 사용하니 괜찮다. 식사 준비는 캠핑장 안주인 마리아 씨의 질녀인 마샤(15세)와 나타샤(18세)가 담당했는데, 여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이 소녀들도 텐트에 머물고 있었다.
 
야영장 관리동 겸 식당 내부. 여름철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나타샤(왼쪽)와 마샤(가운데)가 식사를 준비하고 캠핑장 안주인인 마리아(오른쪽)가 모든 것을 관리한다. 사진=박성현
 
오네가호수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낚시를 즐긴다. 물고기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야영장 건너편의 암각화 지점은 카렐리야 공화국 푸도시군 내의 ‘무롬스키 국립단지(경관)보호구역’에 속한다. 이곳에는 엘크와 곰, 늑대 같은 짐승들, 검은뇌조(멧닭, 꿩과의 새)와 큰뇌조, 흰꼬리수리와 물수리 같은 새들, 그리고 농어과 민물고기와 연어과 민물 흰살생선, 호수연어(대서양연어)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영장에 머무는 사람들은 호수로 합류하는 강의 하구에서 낚시를 해 저녁거리로 삼는다. 제대로 ‘손맛’을 보고 싶은 이들은 아예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거의 모든 방문객들의 필수코스는 건너편에 있는 암각화를 둘러보는 것이다. 이곳은 백해의 비그강 바위그림과 함께 2021년 ‘오네가호수와 백해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베소프노스에서 만난 ‘3인조’ 
 
나는 캠프 도착 후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른 러시아인들과 함께 안내자 게르만 씨를 따라 암각화 지점으로 향했다. 계획된 4박 5일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여름철인 6~8월에 볼 수 있고, 5월과 9월에는 얼음이 녹은 후거나 얼기 전에 가능하다. 여름철이어도 비바람이 있으면 배를 띄울 수 없고 물가 바위가 미끄럽기 때문에 날씨가 도와주어야 한다. 안내를 맡은 게르만 역시 여름에만 이곳으로 와 가이드 일을 하는데, 암각화 관련 예술가인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고고학 조사단에 종종 참여했다니 산교육이 된 셈이다.
 
암각화를 보러 가는 나무데크길. 표지판에 _베소프노스곶. 암각화 보호구역으로 관광객 숙박 금지_라고 쓰여 있다. 사진=박성현
 
오네가호수의 암각화는 1848년 지질학자 그레빙크에 의해 처음 발견됐는데 호수의 동쪽 연안을 따라 20km가량 펼쳐져 있다. 물가의 평평한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은 고니를 비롯한 물새들과 여러 동물들, 해석이 분분한 기호들, 사람 또는 의인화 이미지, 배 등 다양하다. 현재까지 총 1,200여 점의 표현물이 등록돼 있으며 여기에는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이나 물속에 잠겨 있는 것들도 포함된다. 물론 우리가 실제로 볼 수 형상들은 그보다 훨씬 적다. 파도와 비바람에 마모되고 물에 잠겼다가 눈과 얼음에 덮였다가 지의류(地衣類)에 덮이다 보니 학자들이 현장조사 때 보존 작업을 해도 암각화의 훼손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여러 섬과 곶들에 흩어져 있는 많은 형상들이 정기적으로 관리되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오네가의 대표적인 바위그림들은 선명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방문자에게 자신의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작동되지 않는 등대. 베소프노스로 가는 길에 보인다. 사진=박성현
 
초르나야 레치카 하구에 위치한 야영장 입구에서 짧은 강폭을 건너 1.5km 정도 걸어가면 베소프노스가 나온다. 오네가호수 암각화의 절반 이상이 클라도베츠곶과 베소프노스곶 그리고 페리노스곶에 모여 있다. 모래밭과 숲속을 지나 베소프노스로 가는 길에는 나무데크가 일부 깔려 있고 지금은 작동되지 않는 등대가 보인다. 이곳이 베소프(악마의) 노스(곶, 원래 뜻인 ‘코’에서 바뀌었다)로 불리는 이유는 후대인들에 의해 소위 ‘악마’로 명명된 거대한 표현물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같은 이름의 마을이 인근에 있었다고 한다. 이 의인화 형상의 양옆으로 역시 거대한 크기의 모캐(또는 메기)와 수달(또는 도마뱀)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 셋이 합쳐져 ‘3인조’라는 별명이 생겼다. 
 
거대인간은 왜 훼손당했나?
 
3인조 중 이른바 ‘악마’는 길이가 2.46m로, 직사각형 모양의 몸이 아래쪽으로 가면서 약간 넓어진다. 북동쪽을 향한 머리는 거의 정사각형인데 윤곽선으로 새겨져 있고 그 안에 두 개의 둥근 눈과 직선인 코 그리고 곡선의 입이 있다. 그런데 왼쪽 눈의 경우 눈동자가 윤곽선으로 표현돼 있는 반면, 오른쪽 눈은 전체가 파여 있다. 러시아 연구자들은 오른쪽 눈 내부에 금속도구로 타격이 가해진 흔적을 보고 이 눈이 후대에 의도적으로 손상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인물은 얇은 팔을 위로 뻗고 다리를 벌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무릎이 구부러져 있다. 목은 가늘고 허벅지도 종아리보다 가늘어 인상적이다. 두 손에는 각각 5개의 손가락이 펼쳐져 있다. 왼쪽 팔의 위로 정교의 십자가와 상징물들이 새겨진 것이 보인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15~16세기경 이 지역에 있는 무롬 수도원 수사들이 이교도의 ‘악마적인 그림’이 갖는 부정적인 힘을 무력화하기 위해 그랬다는데, ‘설’일 뿐 증명된 것은 없다. 다만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암각화를 ‘악령’의 산물로 여긴 정교 신앙의 후대 사람들이 훼손한 것임은 거의 분명하다 하겠다(이 근사한 인물이 ‘악마’로 불리는 것은 부당해 보이니 우리는 임시로 ‘거대인간’이라 하자). 
 
베소프노스의 3인조 중 이른바 _악마_로 불리는 거대한 의인화 형상. _악마_의 오른쪽에 위치한 수달이 멀리 위에 보인다. 사진=박성현
 
이 인물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몸통 정중앙을 세로로 가르는 바위의 균열선이다. 연구자들은 이 균열이 암각화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에 동의한다. 인물의 좌우를 균일하게 대칭으로 나누는 이 균열은 무슨 의미일까? 오네가호수의 신석기 예술가들은 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바위의 자연적인 균열을 사용해 그림을 새긴 걸까? 앞으로 보겠지만 균열을 활용한 형상들은 오네가호수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그 균열의 의미를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3인조의 다른 두 이미지로 돌아와 보자.
 
베소프노스의 3인조 중 수달(또는 도마뱀). 크기 가늠을 위해 꼬리 쪽에 스케일바(측정자)를 놓았다. 사진=박성현
 
거대인간의 왼쪽 위로 약간 더 높은 곳에 역시 거대한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길이는 2.65m이며 모캐 또는 메기로 해석된다. 북동쪽을 향해 있는 네모난 머리와 그 안에 묘사된 두 눈은 선새김이고 나머지는 모두 면새김으로 되어 있다. 거대인간 역시 얼굴을 제외한 몸은 면새김이다. 면새김은 표현 대상의 형태 내부를 쪼거나 긁어 전체를 파내는 방법(실루엣 기법)이고 선새김은 윤곽만 새기는 방법(윤곽 기법)이다. 3인조의 또 다른 구성원은 거대인간의 오른쪽에 새겨진 수달 또는 도마뱀이다. 2.56m 길이로 면새김이 사용됐다. 역시 머리 방향은 북동쪽이다. 물가에 바로 붙어 있는 비스듬히 경사진 바위, 붉은빛이 감도는 넓적한 돌 위에 이들이 함께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위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자니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그들의 일부임을 느끼게 된다.
 
베소프노스의 3인조 중 하나인 거대한 물고기 형상. 모캐 또는 메기로 해석되며 _악마_의 왼쪽에 위치해 있다.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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