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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 9일 19:4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의 가파른 성장세에 금융사들의 수탁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수익률을 장점으로 내세운 증권사들이 앞다투어 금융상품 라인업을 늘려나가는 가운데, 지난해 10월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시행이 경쟁에 불을 붙였다. 특히 비교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은행과 보험사로부터 증권사로의 머니무브(자산 이동)가 확대되면서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을 둘러싼 금융업계의 경쟁은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원금보장 보다 수익률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노후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본래 목적이 자칫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14개 증권사의 적립금은 103조9257억원(24.3%)으로, 2분기부터 보험을 앞질렀다. 국내 12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액이 225조7684억원으로 금융권 전체(427조1916억원)의 52.8%를 차지하고 있지만, 증권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점유율은 커지는 추세다.
(사진=고용노동부)
투자 자유도 높인 증권사, 머니무브 가속
증권사로 머니무브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은행과 보험에 비해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증권사는 사실상 모든 금융상품에 투자를 할 수 있는 데다 특히 실적배당상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보험사는 일부 펀드에만 투자할 수 있고 은행도 ETF나 리츠 등 상장상품 투자가 제한적이다.
투자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의미는 결국 수익률로 귀결된다. 최근 10년간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2023년 말 기준)은 2.07%에 그쳤지만 증권사의 DC형·IRP 수익률은 7.11%로 은행 4.87%나 보험사 4.37~4.63%를 크게 앞질렀다. IRP 수탁고도 전년 대비 31.2% 급증해 DB형 6.7%, DC형 18.1%의 성장률을 뛰어넘었다.
예금에만 묶여있던 퇴직연금이 점차 수익성을 추구하는 시장으로 돈이 풀리면서 퇴직연금 시장의 무게중심이 점차 증권사로 이동하고 있다. 원리금보장 상품 적립금은 은행이 46조원으로 증권사보다 많지만 비보장 상품은 증권사가 16조7440억원으로 은행(15조7531억원)을 추월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도 한몫했다. 지난해 10월 시행 이후 3개월간 약 2.4조원이 이동했고, 증권사는 4051억원 순증, 은행은 4611억원 순유출을 기록했다. IRP가 전체 실물이전 적립금 중 38.4%를 차지해 머니무브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ETF 상품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은퇴 시점을 목표로 자산 배분을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생애주기펀드(TDF)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라며 “다양한 금융상품을 보다 전문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증권업으로의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TDF,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주의'
일각에선 퇴직연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정적으로 운용돼야 할 퇴직연금이 금융사들의 운용 전략에 따라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새로운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도도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표적 비보장 상품인 TDF는 2021년 11.2%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2022년 -15.4%로 급락했다. 이 영향으로 설정액 성장세도 둔화됐다. TDF 설정액 규모는 2022년 9조2244억원에서 2023년 9조6228억원으로 성장하는 데 그쳤다.
올해 1분기 주요 운용사들의 TDF 수익률도 모두 마이너스였다. 에프앤가이드 공시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 -4.47%(전략배분·자산배분·우리아이TDF 평균) ▲삼성자산운용 -1.95%(KODEX·개인연금ETF·ETF·한국형 TDF 평균) ▲한국투자신탁운용 -1.8%(알아서·알아서골드·알아서ETF포커스·신종개인연금 TDF 평균) ▲KB자산운용 -1.73%(다이나믹·KBSTAR·온국민 TDF 평균) 등 주요 운용사들의 수익률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업계 1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국 주식 비중을 높여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짠 것이 독이 됐다는 평가다.
한 투자운용사 사외이사는 "우리나라는 운용 역사가 깊은 미국 등과 달리 2016년 이후 TDF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트랙레코드는 사실상 전무하다"며 "최근 몇 년간 운용사들의 기술적인 보완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인출이나 개인별 맞춤 운용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후발 주자로 나선 운용사들의 공격적인 운용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미국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빈티지(퇴직 시점)가 2010년이었던 TDF의 주식 비중이 50%에 달해 큰 손실을 입고 관련 규제 강화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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