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국책은행 수장들의 임기 만료가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후임 행장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기 관행적으로 반복돼온 '낙하산 인사'가 재현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요. 정책금융기관 본연의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내부 출신 인사가 등용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장, 다시 내부 출신?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성태 기업은행장 임기는 내년 1월 종료될 예정이며 산업은행의 경우 강석훈 전 회장이 6월 초 임기가 종료된 이후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윤희성 수출입은행장도 오는 26일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선 기업은행의 경우 아직까지 후임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본격화하진 않았지만, 정권 교체 이후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논의되면서 은행장 인선에 관심이 커진 상황입니다. 기업은행장 제청권이 금융위원장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행은 1961년 설립 이후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국책은행으로서 특수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재정경제부나 기획재정부 등 관료 출신 인사들이 행장직에 오르며 '낙하산' 논란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조준희 전 은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 김도진, 김성태 등 최근 5명의 은행장 중 윤종원 전 행장을 제외한 4명이 모두 내부 출신 인사로 선임됐습니다. 기업은행 내부에서도 "내부 출신이 조직 사정에 밝고, 갈등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은행이 노동조합과 갈등으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는 만큼 내부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은행장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총액인건비 예외 적용 등을 내세워 지난해 12월 설립 이래로 첫 단독 총파업을 단행한 바 있습니다. 그 뒤에도 노조는 사측의 실적 목표 설정 과정에서 소통 부재,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문제를 제기하며 천막농성까지 벌였습니다. 총액인건비제란 공공기관이 연간 인건비 총액 한도를 정해 그 범위 내에서 임금·상여금·복리후생비 등을 집행하도록 한 제도로, 기업은행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이 제도의 적용을 받아왔습니다.
김성태 은행장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검토하며 방안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2월에도 "시간외수당 등 일부 항목에 총액인건비제 예외 적용을 검토하고, 기획재정부와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최근 기업은행에 시정 지시 공문을 보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을 지급하라 했고 금융위원회도 경영예산심의회를 열어 총액인건비제도에 기업은행을 예외시키기로 하면서 문제의 해결 조짐이 보입니다.
이에 노조는 지난 21일 사측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농성 천막을 자진 철거하기도 했습니다. 노조는 이런 갈등 상황에서 김성태 은행장 같은 내부 출신 수장이 다시 임명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부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조직 안정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다수입니다.
왼쪽부터 윤희성 수출입은행장, 강석훈 전 산업은행장, 김성태 기업은행장. (사진=뉴시스)
산은, 낙하산 끊어낼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경우 수장 자리가 공석이거나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있어 새 인선에 더욱 이목이 쏠립니다.
산업은행은 지난 6월 강석훈 전 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서 현재 김복규 수석부행장이 직무를 대행 중입니다. 산업은행은 유독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잦았던 국책은행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부 출신 인사가 회장직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이명박정부 시절 강만수 전 회장은 대통령 경제특보 출신으로, '보은 인사' 논란에 휘말렸고, 박근혜정부 홍기택 전 회장은 서강대 금융인 모임 출신으로 코드 인사 논란이 있었습니다. 문재인정부 당시 이동걸 전 회장은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렸으며, 윤석열정부에서는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정책특보를 맡았던 강석훈 전 회장이 수장에 올랐습니다. 정권 교체 시마다 외부 출신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구조 속에서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었습니다. 강석훈 전 회장은 임기 내내 산은의 부산 이전 추진 문제로 노조와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수출입은행 윤희성 행장은 수출입은행 역사상 첫 내부 출신 수장으로 기획재정부와 같은 외부 관료 중심 인사에서 내부 인사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직전 행장이었던 방문규 전 행장은 기재부 출신이며 은성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역시 수출입은행장을 거쳐 금융위 수장을 맡았습니다. 윤희성 행장은 수출입은행에서 홍보실장과 국제금융부장, 자금시장단장을 거쳐 혁신성장금융본부장까지 지내며 퇴임한 뒤 우리금융캐피탈 사외이사로 활동하다가 수은 행장으로 복귀한 바 있습니다.
수출입은행 노조 등 내부에서는 윤희성 행장 취임 당시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앞서 외부 출신 인사들에 대해서 매번 출근 저지 투쟁 등 강한 반발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수출입은행 내부에서는 이번에도 내부 출신이 이어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룹니다. 윤희성 행장과 같이 내부 출신 퇴직 인사들도 다시 후보군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내부 조직 이해도 높아야"
금융권에서는 이번 국책은행 수장 인선이 이재명정부의 '금융 정상화' 정책 기조를 가늠할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부 출신 인사가 임명될 경우 조직 연속성 보장과 정책금융 전문성 강화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이해도가 높은 만큼 노사관계 안정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국가기간산업 구조조정과 경제 체질 개선이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국책은행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입니다. 이런 시점에 경험 많은 내부 전문가가 리더십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신이나 중소기업 육성, 인공지능 등 새 정부의 중점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이해도가 높은 인사가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재명정부가 강하게 추진 중인 금융당국 조직개편과 정책 방향성에 비춰 볼 때 국책은행 수장 인선에서도 조직 안정성과 정책 연속성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동안 반복돼온 낙하산 인사 논란을 해소하고 전문성을 가진 내부 출신 수장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책은행 수장들의 임기 만료가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후임 행장 인선에 관심이 쏠린다. 정권 교체기 관행적으로 반복돼온 '낙하산 인사'가 재현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 가운데 내부에서는 금융기관의 본연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내부 출신 인사가 은행장이 되길 바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사진은 왼쪽부터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각사 모습.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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