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 가득 한·미 정상회담, '국민주권'에 답 있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한·미 관세 협상이 주는 메시지
2025-08-19 06:00:00 2025-08-19 06:00:00
2008년 6월 서울 광화문에 열린 '광우병 촛불집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 협상단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사진을 적극 활용해 큰 효과를 봤다. 
 
"우리 측에서 소고기와 쌀은 레드라인이라고 강한 입장을 가져갔다. 우리는 다양한 논리와 주장을 펼치다가 어느 단계부터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사진을 들고 다녔다. 광화문 100만명 시위 사진을 가지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감정에 호소해서 설득하는 노력도 했다."
 
협상단의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관세 협상을 타결한 직후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국의 압박에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설명하는, 감성에 호소하는 방어 전략으로 맞서면서 당시 사진을 적극 활용했다는 얘기다. 이 사진들은 임용된 지 갓 9개월 된 농식품부 수습 사무관이 앨범으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 부각됐다. 
 
당시 협상에서 농산물 분야, 특히 30개월령 미만 소고기 수입 허용 문제는 큰 쟁점이었다.
 
"미국은 소고기 30개월 월령 제한을 두는 나라가 전 세계 3개뿐이라고 얘기하지 않나. 우리는 미국 소고기 수입 1위 국가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당연히. 당연히 고성이 오갔을 것이고, 우리 정부 내에서 협상 전략이 오갈 때도 부처 간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다 예상한 대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이 문제를 놓고 한·미 협상단 간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고성이 오가는 격한 협상을 17년 전, 출범한 지 반년도 안 된 이명박정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100만 시위'가 뚫어냈다는 것이다. 
 
미국 아들 부시 행정부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협정을 체결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서 서울에서만 70만에 달했던 촛불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었다는 감성적인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 6명을 경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도 한국 내 극심한 반대 여론을 인식하게 되면서 결국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이 금지됐고, 이 규정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돼왔다. 당시 시위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한국 내 누구도 이 문제를 재론하기가 어려웠다. 
 
"국내 농축산업계 반발, 미국도 모니터링"…한·미 정상회담에 주는 힌트
 
하나가 더 있다. 여한구 본부장은 "최근 국내 농축산업계의 반발을 미국에서도 모니터링을 했다. 이런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30개월령 소고기 수입 허용, 사과 검역 완화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 요구에 대한 한국 내 반발을 트럼프 행정부도 알고 있었고, 이런 게 종합적으로 대미 협상에 지렛대가 됐다는 얘기다. 사실 이번 관세 협상을 앞두고 농축산물 분야는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대단한 힌트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17년이 지난 2025년의 한·미 관세 협상을 타결하는 데 구원투수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거가 현재를 구원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강 작가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밝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표현을 빗댄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현재도 미래를 도울 수 있다. 
 
모든 국제 협상은 사실은 양면 협상이다. 정부 간 국제 협상과 각국 정부가 자국 내 정치 세력, 이해관계 집단의 동의를 얻는 국내 협상, 두 가지로 구성된다. 각 정부는 국제 협상 내용이 국내 동의를 받을 수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협상해야 한다. 
 
나름으로는 국가 간 협상을 잘했다고 해도, 국내에서 비토당하면 말짱 꽝이다. 오히려 하지 않는 게 좋았을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2008년에 광우병 촛불시위를 초래한 한·미 소고기 협상이 그랬고, 2015년 박근혜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다. 
 
외교와 국내 정치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상호 작용한다는 '양면게임(two-level games) 이론'을 정립한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그 핵심 개념으로, '윈셋'(win-set)을 제시했다. 윈셋은 "국제 협상은 각국이 자국 내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모든 합의의 집합"이다. 각국의 윈셋이 크면 합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윈셋이 작으면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커지게 된다. 즉 더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한국 내 윈셋이 극도로 작아지면서 이명박정부의 협상력을 키워, 미국을 상대로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조치를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외교 즉, 국제 협상에서 국내 정치는 협상력을 높이는 중요한 기제인 동시에 국제 협상의 목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지난 달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인근에서 열린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에서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는 2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다. 우리 입장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만만한 적이 있었을까마는, 이번에는 더욱 그렇다. 상대가 "제국주의 시대 회귀냐"는 말까지 듣는 트럼프이고, 의제들도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지난 관세 협상에서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를 구체화해야 하고, 당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이 대통령이 양자 회담을 위해 백악관으로 올 때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추가 대미 투자 계획도 공개해야 한다. 
 
'한·미 동맹 현대화'는 더 난제다. 대중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규모 및 역할 재조정과 그에 따른 한국군의 역할 확대, 한국의 국방비 증액,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포괄한다. 그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한국을 들었다 놨다 할 이슈다. 
 
외교·안보 관련 사안은 은밀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대외 상대가 있고, 특히 북한 관련 사안이 많아서 그렇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회는 비밀이라는 게 거의 없어졌지만 국회증언감정법도 군사·외교·대북 분야는 자료 제출 거부를 수용하고, 대통령실 근무자 명단도 국가안보실은 비공개를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최대 범위 내에서 공개해야 한다. 직접 공개가 부담스러우면 국회 보고 등을 통해 간접 공개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대미 교섭력을 확보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대단히 긴요하다. 
 
'정책 결정 과정 민주화' 대상에 외교·안보 분야도 확대해 가야
 
이것이 명실상부 '국민주권정부'의 모습일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부터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그것이 정책으로 결정되는 '정책 결정 과정의 민주화' 대상에 외교·안보 분야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두 차례나 국민이 직접 나서 무도한 정권을 퇴출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대 사건이다. 한번은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또 한번은 오히려 실패하기 어렵다는 친위 군사쿠데타를 시민들이 맨손으로 막아내고 평화적으로 민주 질서를 회복해냈다. 
 
전 세계적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가장 결연하게 민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으로 칭송받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대외 무기는 바로 이것 아닌가. 공교롭게도 두 차례 다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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