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3일 발표된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계획(안)에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확정하고 5대 국정 목표와 23대 추진 전략에 기초하여 123대 국정 과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러한 이재명정부의 국가 비전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는 헌법 정신을 국정 운영의 기반으로 천명했음을 의미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123대 국정 과제 중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 개정’을 첫 번째 추진 과제로 내세우면서 ①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 등 헌법 전문 수록, ②대통령 책임 강화와 권한 분산, ③검찰 영장 청구권 독점 폐지, ④안전권 등 기본권 강화 및 확대, ⑤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을 위한 논의 기구 신설, ⑥행정수도 명문화 등을 개헌 의제로 열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상계엄 이후 훼손된 헌법 정신 복원 및 헌정 체제에 대한 국민 자긍심 고취 등 그 취지에서 볼 때 국민 모두가 긍정할 수 있는 과제로 평가된다. 다만 경제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주인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다소 아쉽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면서(제1조 제1항) 제2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경제 분야와 관련해서는 재산권 보장과 그 한계에 대하여 규정하면서(제23조) 납세의무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제38조). 특히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써 정하도록 헌법에 재차 규정하고 있는데(제59조) 이는 조세의 징수가 국가 운영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납세의무를 국방의무(제39조 제1항)·교육의무(제31조 제2항)·근로의무(제32조 제2항) 등과 함께 ‘국민의 4대 의무’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와 의무’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기타의 의무와는 달리 납세의무에 대해서만 ‘오로지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제38조). 주지하듯이 현대 국가의 조세는 봉건체제하에서 국왕의 신민에 대한 경제적 수탈을 방지 및 재산권 보장을 위한 시민혁명의 산물로써 점진적으로(영국 등) 또는 혁명적으로(프랑스 등) 입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인권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는 ‘공권력 유지와 행정비용 조달을 위한 조세 부과와 재산 규모에 따른 공평 과세(제13조)’를 규정하면서 ‘직접 또는 간접 참여에 의한 조세법률주의’를 명시하여 납세의무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선언하고 있다(제14조).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상 조세에 관한 규정은 입헌군주제하의 일본 헌법 규정을 차용해 현재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일본 헌법 제30조.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한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는 ‘정의의 이념에 따라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조세정의’라고 설명하면서(헌재1989.7.21. 89헌마38) 재정 수입 확보 이외에 국민경제적·재정정책적·사회정책적 목적 달성을 위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납세자 간의 차별 취급도 예외적으로 허용된다고 판시하고 있다(헌재2002.8.29. 2001헌가24). 이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규정(제119조 제2항)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정부의 정치 분야에 대한 개헌도 중요하지만 경제 분야의 개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입헌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며 조세는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정부의 ‘진짜 대한민국과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개헌’을 기대한다.
유호림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한국세무학회 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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