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면서도 엔비디아와 AMD의 대중 수출을 허용한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에는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중 잣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K-반도체를 제외해 미국산 장비를 중국으로 반출할 수 없게 한 것으로, 향후 중국에 장비를 반입할 때 일일이 미국의 심사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미 장비가 갖춰진 만큼 단기적으로는 타격이 적을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 중국 내 공장에서의 반도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업계는 120일의 유예기간 사이 정부와 협력해 VEU 제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협의할 방침입니다.
중국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나흘 만에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K-반도체에 대한 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공장과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공장 등을 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했는데, 중국 법인인 ‘인텔반도체 유한공사’와 ‘삼성 반도체 유한공사’, ‘SK하이닉스 반도체 유한공사’ 세 곳을 제외한다고 밝혔습니다. 시행일은 관보 정식 게시일인 2일에서 120일 후인 내년 1일부터입니다. 인텔반도체 유한공사는 SK하이닉스가 인수한 곳인 만큼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을 겨냥한 셈입니다.
VEU란 중국을 억제하되 동맹국 기업의 피해는 줄이기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규정입니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일부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하면서도 동맹국 기업의 중국 내 공장에는 적용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뼈대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VEU 자격으로 미 정부의 승인 없이 중국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반입했지만, 이번에 제외되면서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건별 심사로 미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엔비디아와 AMD 등 AI 칩 제조업체의 대중 수출을 규제했지만 최근에는 매출의 15%를 정부에 내는 조건으로 규제를 풀어줬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사실상 미중 분쟁 사이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에만 규제를 가한 셈이 됐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가동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피해가 적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을 생산하고 있지만, 두 공장 모두 한국 내 생산라인보다 1~2세대 뒤처진 공정을 사용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국내에서만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시 중국 내 공장의 ‘현상 유지’는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사진=SK하이닉스)
다만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기술 변화가 빠른데, 새 장비를 들일 수 없자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영향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 산업보안국(BIS)도 “중국 내 제조시설에서 생산 능력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허가는 승인할 의도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새 장비 반입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입니다.
유봉영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과 교수는 “신규 장비의 반입을 막는다고 하면 힘들어질 수 있다”며 “신규 라인을 설치하고, 장비를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는데 장비 최신화가 막히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업계는 120일의 유예기간이 남았고, 현상 유지를 위한 장비 반입은 허용되는 등 세부 사항에서 협상의 여지가 남은 만큼 소통을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계에서 변동이 너무 잦아지다 보니 예단하기 어려워졌다”면서 “미국 정부와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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