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미 통상 협상이 '대미 투자 금액'과 '관세 인하 폭'을 명시하는 수준의 포괄적 합의안 조율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미 측이 "투자금을 전액 현금으로 선불 지급하라"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입니다. 29일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가 먼저 이뤄지고, 이후 세부 실무 조율을 거쳐 타결안을 확정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유력합니다. 구속력 있는 조약이 아닌 '팩트시트' 형식의 설명 자료에 통상과 안보를 아우르는 내용이 담기는 방법이 거론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숨 돌린 '관세'…"'팩트시트' 발표 후 후속 협상"
21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한·미 양국은 '대미 투자 구조' 등 첨예한 쟁점을 일단 제외하고, 포괄적 합의문을 정상회담에서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합의문에는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투자 금액을 명시하고, 자동차를 포함한 주요 품목의 관세를 현행 25%에서 15%로 낮추는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날 관세 후속 협상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하고 돌아온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미 측이 우리 측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특히 "가장 큰 입장 차는 한국의 외환시장에 관한 부분에 있었는데, 양국이 상당한 공감대를 이뤘다"며 "그것을 바탕으로 이번 협의가 준비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도 결국 한국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대출·보증을 포함한 분할 투자'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분위기입니다.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와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재무부의 외환안정화기금(ESF) 활용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앞서 귀국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언급한 "조율이 한두 가지 필요한 쟁점" 역시 직접·간접 투자 비율, 투자처 선정·운용·이익분배 등 '대미 투자 구조'에 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전날 공개한 한·미 관세 협상 관련 보고서에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금 중 현금 비중을 10%대로 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는 외환 안정 조치가 현실적인 타협안"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앞서 우리 정부가 제시한 현금 투자 비율은 5%였지만, 미국이 '전액 현금'을 요구해 온 만큼 후속 협상에서 모건스탠리가 제시한 수준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관세 인하는 연내 시행이 어려울 전망입니다. 일본의 경우 양해각서(MOU) 서명 후 12일 만인 9월16일 관세 인하가 발효됐습니다. 반면 한국은 MOU 문안 조율이 길어질 여지가 큽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로이터)
'안보·원자력 협력'도 문서화 전망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에는 도달했지만, 관세 합의 불발로 발표되지 못한 안보 관련 내용도 문서화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산 무기 구매를 확대하는 대신, 미국은 한·미 동맹의 성격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는 방향을 명시한 문구도 이번 문서에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1974년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이후, 미국이 한국에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는 내용을 문서에 명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와 관련해 조현 외교부 장관은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양국이 잠정 합의하고 합의문까지 작성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고위급 협상단의 귀국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주 김용범 실장과 김정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협상안을 직접 점검할 예정입니다. 우리 실무진은 지난 주말 장관급 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 측과 화상회의를 통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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