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촉발된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에 각종 조치를 취하기 시작, 중·일 간 외교 전면전도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일 갈등 상황 속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인데요. 전문가들은 일제히 한국이 중립을 유지하되 미국과는 협력, 중국과는 관계를 유지할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국군, 서해 훈련 가동…연일 무력 과시
중국 매체 <베이징일보>는 20일(현지시간) 중국군이 연이어 일본을 향해 경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군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한 영상에도 무장한 중국 병사가 "오늘 밤 전투가 시작되면 된다. 우린 언제나 준비돼 있다"며 "전우여 준비돼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영상에선 중국 항공모함 편대와 항모 탑재기 이륙, 군함의 실사격 훈련 장면 등도 소개합니다. 중국은 전투기가 목표물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도 과시했습니다.
중국의 세 번째 항공모함인 푸젠함은 서해상에서 취역 이후 첫 해상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아울러 중국군은 17~19일엔 서해 중부 일부 해역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했고, 18~25일엔 서해 남부에서 사격훈련을 진행합니다. 훈련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과는 불과 870㎞ 떨어진 곳입니다.
이번 중국 군사훈련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중·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진행됐습니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7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며 "대만이 공격받으면 일본이 자위권 차원에서 무력 개입을 할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습니다.
최근 중·일 갈등은 연일 확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 수산물 수입 통제, 영화 개봉 보류, 여행 자제 권고 등을 통해 일본을 향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습니다. 중·일 매체에선 중국이 일본 기업 제재와 희토류 수출까지 통제할 가능성도 언급됩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무역과 경제 분야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앞서 중국과 일본은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외교 회담도 진행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다만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별도 관리하는 모습입니다. 중·일은 한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각각 '한·중 관계 정상화'와 '셔틀외교 지속'에 중점을 뒀습니다. 일각에선 중·일 갈등을 통해 한국이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중국이 한일령 등으로 일본에 초강력 조치를 취하면 한국이 중국과 현재보다 유연한 협상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한·중 외교에 공간 발생…중국, K-핵잠 견제 '후순위'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도 다시 시험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외교가에선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투트랙 전략을 통해 미국과는 동맹 강화, 중국과는 교류·관계 유지 등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중국의 행동에 대해 한국에게 직접적인 불리 요인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의 역할 공간은 늘었지만, 철저한 중립 유지가 최선"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중국은 한국을 '미국과 한 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한국이 나서면 미국 입장을 대변한다고 오해받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되, 미국과의 협력도 포기할 수 없다"며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세워 그 틀 안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압박과 미국의 압박이 동시에 올 수 있는 만큼, 원칙을 지키는 게 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을 막는 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과 일본이 서로 견제하는 상황은 한국에 즉각적인 불리 요인은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임 교수는 "오히려 중·일이 한국에 접근하며 영향력 확대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이) 능동적으로 개입하거나 중재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며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일각에선 중국과 일본이 전면전을 벌이면 중국이 촉각을 곤두세운 한국의 핵연료 추진 잠수함(핵잠) 견제도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앞서 중국은 한국의 핵잠 건조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일제히 한국 핵잠수함 추진은 중·일 갈등과 무관해 한국을 직접 겨냥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습니다. 공개적 논란 없이 안보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강 교수는 "중국은 한국의 핵잠 보유 움직임에 대해 불편하지만 공개적으로 강하게 문제 삼기 어려운 사안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어 "북한도 핵잠을 언급한 상황에서 한국만 비판하면 중국이 논리적 일관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도 "중국이 핵잠 문제로 한국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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