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부터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광장에 모였습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또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한남동에서 불법 계엄에 반대하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습니다. 계엄 정국 당시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습니다. 그동안 <뉴스토마토>가 광장에 모인 시민들과 함께 하며 ‘시민영웅’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였습니다.
1년이 지나서 계엄 사태를 돌아보는 시민들은 ‘내란 청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한편으로, 시민들이 보여줬던 민주주의 열망이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씨 파면을 결정한) 4월4일까지는 긴장 상태의 연속이었다. 이후 대선을 치르고 새로운 대통령이 뽑으면서 일상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집회 나가는 대신, 아이들 키우고 생업에 집중하면서 그동안 밀린 일도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윤석열씨의 내란 재판을 지켜보면서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윤석열씨 탄핵 촉구 집회에서 ‘키즈버스’를 운영했던 권순영씨는 “사람 바뀐다고 원하는 변화가 바로 오지 않는다는 건 오랜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권씨는 어린 아이 때문에 당시 집회 참가가 쉽지 않았는데, 다른 시민들과 함께 키즈버스를 운영했던 현장의 경험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란이 완전히 종식되고 다시는 계엄이란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민들이 타협과 중단 없이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일대에서 탄핵 촉구 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윤석열씨 규탄과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의 천승훈 보좌관도 내란 청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는 윤석열씨 탄핵을 촉구하며 밤새 눈을 맞으며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을 지킨 ‘키세스’ 사진으로 유명했습니다. 천 보좌관은 “내란과 윤석열정부 인사들에 대한 재판을 지켜보면 한숨만 나온다”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시민들의 열망을 안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특히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와 기득권 세력의 ‘막무가내’ 저항에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천 보좌관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요구했던 건 윤석열 탄핵과 내란세력 척결만이 아니었다”며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이 나왔고, 계엄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실질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가 컸다”고 했습니다. 특히 “최근 노동자들의 과로사과 중대재해 문제들이 계속되고 있다”며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온전하게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적 요구들이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아쉬워했습니다.
탄핵 집회가 진행되던 4개월여 동안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민들과 함께 했던 민중가수 백자씨는 “지난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시간이 빨리 지났다. 불법 계엄을 막아낸 시민들의 힘을 절감했던 시간”이라면서도 “내란을 청산하는 과정은 광장에서 시민들이 보인 염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제대로 처벌 받은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시인이기도 한 서효인 안온북스 대표는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동안 414명의 작가들과 함께 짧은 탄핵 촉구 성명을 작성하고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서 대표는 “가끔씩 학교에서 특강을 하면 당시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하고, 문학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도 함께 나눴다”며 “내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넓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비상계엄과 같은 사태뿐 아니라 약자를 배제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행태가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그동안의 형식적인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시민들 개개인에 내면화된 민주주의, 좀 더 본질적인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이를 요구하는 과정이 계속돼야 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씨 파면을 선고한 이튿날인 5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사회대개혁 집회 및 승리대회’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는 “광장에서 나왔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돌봄이나 여성 문제 등을 포함해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는 사회여야 한다는 울림이었다”며 “변화라는 것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꽃을 심고 가꾸기 위해선 꽃밭의 일부 잡초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꽃밭을 갈아엎고 새로 터를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진행 중인 내란 청산 과정에서 서로 지치지 말고 서로의 존엄, 다양한 생명의 가치를 살리는 변화가 이뤄졌으면 하다”고 바랐습니다.
박종근씨는 지난 내란 사태를 사회 개혁의 전환점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씨는 탄핵 집회 때마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깃발을 들고 참여해 ‘깃돌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탄핵 집회가 주목을 받은 건 젊은 세대가 여성과 노동, 소수자, 환경 등 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제기했고 응원봉을 들고 집회 현장을 축제로 만들었다는 점”이라며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위해서 필요한 젊은 세대의 이런 태도와 문제제기가 계속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 성숙을 위한 광장의 축제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박씨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 소수자 차별과 동물권 등 진보적인 의제들이 계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모두 나왔다”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축제의 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만든다면 우리 사회가 계엄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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