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팻 겔싱어 인텔 전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반도체 스타트업 엑스라이트에 지분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엑스라이트는 노광장비의 레이저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이번 투자는 미국 반도체 제조 기술력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풀이됩니다. 중국도 미국의 첨단 장비 수출 규제로 반도체 장비 자립에 속도를 내는 만큼, 첨단 제조 역량 확보를 위한 양국의 투자전이 더 치열해지는 모습입니다.
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4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인텔 비전 2024’에서 가속기 ‘인텔 가우디 3’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인텔).
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 투자를 기반으로 한 반도체 기술 투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1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미국 반도체 스타트업 엑스라이트에 1억5000만달러(약 2200억원)를 투자하는 의향서(LOI)에 서명했습니다. 대신 상무부는 1억5000만달러어치의 엑스라이트 지분을 받게 됩니다. 이는 NIST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를 이끌게 된 이후 처음 투자하는 계약입니다.
엑스라이트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쏘는 레이저를 개발하는 업체로, 지난 3월 겔싱어 CEO를 상임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하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특히 레이저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부분으로 꼽힙니다.
기존 EUV 공정에서 쓰이는 레이저는 레이저생성플라즈마(LPP) 방식인데, 이보다 훨씬 적은 전기를 사용하는 자유 전자 레이저(FEL) 방식 레이저를 개발 중입니다. 이는 입자 가속기에서 파생된 기술로, 엑스라이트는 2028년을 목표로 가동 및 웨이퍼 인쇄가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UV는 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로, 반도체가 미세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 ASML이 사실상 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 중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은 너무 오랫동안 첨단 노광 분야를 다른 나라에 내줬다”라며 “트럼프 대통령하에서는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중국도 EUV 공정 자립에 속도를 높이는 중입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3기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하고, 3440억위안(약 71조5451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장비, 소재, 부품 등 병목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국기와 반도체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이에 중국과학원(CAS)과 장장 연구소 등은 올해 들어 EUV 공정에 쓰이는 빛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LPP 방식의 레이저가 아닌 FEL과 에너지 회수형 선형가속기(ERL)을 결합해 EUV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로 불리는 장비 업체 나우라는, 지난해 기준 글로벌 공정장비 시장에서 2.6%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글로벌 6위 수준으로, 매출액 기준으로는 지난 2023년 글로벌 8위로 10대 장비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2021년 화웨이의 내부 연구조직 ‘싱광 엔지니어 프로젝트팀’ 인력들이 설립한 기업 사이캐리어(SiCarrier)는, 5나노 이하 공정을 위한 심자외선(DUV) 장비를 개발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SMIC는 반도체 장비 기업 위량성과 함께 DUV 노광장비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술 격차를 내기 위해 정부 투자를 기반으로 민간업체들의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는 흐름입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공정 기술로만 따지면, 글로벌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친다는 평가입니다. 다만 내수 중심의 생태계를 조성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수출 규제 등으로 첨단 장비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자체 공정 개발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면서도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은 전폭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레거시 공정을 발전시켜 자체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