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매년 11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되는 블랙프라이데이→사이버먼데이→연말 연휴 쇼핑 시즌은 한때 '미국 소비의 불꽃놀이'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올해 겨울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쇼핑 인파는 여전하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은 예년만큼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고물가와 관세, 경기 불확실성이 소비심리를 짓누르며 '소리만 요란하고 속은 곪은' 쇼핑 시즌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파라무스의 가든스테이트플라자에서 블랙프라이데이 쇼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전미소매연맹(NRF)에 따르면 올해 11~12월 연말 시즌 소매 매출이 전년 대비 3.7~4.2%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AFP 연합뉴스)
역대 최대 쇼핑 인파에도 소비는 위축
30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9.1% 증가한 118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마스터카드 스펜딩펄스 조사에서도 온라인 매출은 1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1.7% 증가에 그쳤다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쇼핑 수요의 중심이 점차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앞서 전미소매연맹(NRF)은 올해 11~12월 연말 시즌 소매 매출이 전년 대비 3.7~4.2%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다만 이는 지난해 증가율(4.8%)보다 둔화된 수준입니다. NRF는 높은 물가와 관세 부담을 고려할 때 '신중한 소비'가 시장의 기본 흐름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소비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장한 이유에 대해 '물건을 많이 샀다'기보다 '가격이 올라서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EY-파르테논의 윌 오킨클로스는 "올해 매출 증가의 3분의 2는 가격 상승 요인, 실제 구매량 증가는 3분의 1 수준"이라며 "종합적으로 매우 미약한 연말 시즌"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컨설팅업체 액센추어 또한 "전체 지출 증가 중 상당 부분은 실질 소비가 아닌 가격 상승의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쇼핑 패턴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만, 싸게"라는 전략으로 돌아섰습니다. 과거처럼 '문 열자마자 달려가 사재기하는' 모습은 사라졌고, 할인 폭이 체감되는 일부 품목만 선별 구매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로이터통신>은 "많이 사서 매출이 늘었다기보다는 가격 인상으로 매출이 유지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리크 고메즈 타깃 최고상업책임자는 "소비자 심리가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일자리·물가·관세에 대한 우려 속에 소비자들은 조심스럽게 연휴 쇼핑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단행한 대중국·전 세계 대상 관세 강화도 가격 상승을 부추겼습니다. NRF 설문에서 85%의 소비자가 "관세로 인해 연말 선물 가격이 더 비싸졌다"고 응답했습니다.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11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6.8포인트 하락한 88.7로 급락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무역전쟁이 시작됐던 4월 이후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입니다. 딜로이트의 루파인 스켈리 리서치 책임자는 "시장은 불확실성이 커졌고, 소비자는 가격 상승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우드버리의 우드버리 커먼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맞아 할인 상품을 찾는 쇼핑객들로 붐비는 가운데 한 의류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계층 간 소비 격차…'양극화 쇼핑 시즌'
이 과정에서 소비 양극화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고소득층은 여전히 명품, 가전, 여행 등 선택적 소비를 유지하거나 확대하지만, 중·저소득층은 생활필수품 중심으로 지출을 줄이는 흐름입니다. 올 한 해 고용시장 둔화, 실질소득 증가세 둔화, 관세에 따른 생활비 부담이 모두 저소득층에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월마트 경영진도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고소득층 고객 유입이 늘어난 반면 저소득층의 지출은 다소 약화됐다"고 언급했습니다. '부익부·빈익빈' 소비 구조가 유통 매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입니다.
특히 저소득층의 취약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사이에서는 BNPL(선구매 후지불) 서비스 사용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신용카드 상환 부담과 체감 금리 부담은 커지고 있습니다. 중저소득층 가구의 필수 지출 비중(렌트, 식료품, 유틸리티)이 높아지면서 재량 소비를 줄이지 않고는 지출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입니다. 콜스의 마이클 벤더 최고경영자(CEO)는 "특히 중저소득층과 젊은 소비자들이 큰 압박을 받고 있다"며 "소비 선택이 점점 더 절박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연말 쇼핑 흐름이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소비 구조 전환의 서막이라고 진단합니다. <로이터>는 "소비자들이 가격과 필수지출 압박 속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이는 미국 소비경제의 구조적 변곡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쇼핑 인파는 유지되지만 지갑은 닫히는 미국 연말 소비 패턴의 본격적인 재편이 시작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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