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직장인들이 연말정산 공제를 위해 가입하는 연금저축은 일찌감치 30대에 가입해 만 55세 연금 개시 가능 연령 때까지 꼬박꼬박 적립했어도 총액은 노후생활을 풍족히 누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은 아닙니다.
연금 계좌를 개설하고 열심히 모아도 공제 한도에 맞춰 불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금은 연금저축 납입 한도 연 600만원, 퇴직연금(IRP)을 포함해 최대 900만원까지 납입액 전액을 세액공제 해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20년간 한도를 채워 적립했다고 가정해도 원금은 1억8000만원, 여기에 연 5%가량 수익률로 운용했다면 2억5000만원쯤으로 불어났을 겁니다.
하지만 연금 공제 혜택은 계속 이렇게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연금저축이 아직 개인연금이던 시절, 2000년까지는 연간 납입액의 40%, 72만원까지만 소득공제 혜택을 줬습니다. IRP가 없던 때입니다. 2001년 연금저축으로 변경되며 400만원까지 납입액 100%를 공제하기 시작했고, 2014년 세액공제로 바뀌었습니다. 2014년 전후를 신구 연금저축으로 구분하는데요. 이때 연간 납입 한도는 1800만원으로 증액됐지만 가입자들은 대개 세액공제 한도 400만원에 납입액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3년 공제 한도가 600만원으로 증액됐습니다.
이 과정을 그대로 따랐다면 20년간 연금을 납입했어도 적립액은 1억8000만원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적연금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가 평균 40대 후반이라는 조사가 있는 마당에 연금저축과 IRP를 더해 1억원 넘게 연금자산을 모은 가입자도 많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억, 아껴 써도 4년이면 끝
그러면 만 55세 시점에 1억원, 많이 잡아 3억원을 모았다고 가정할 경우, 이 돈을 어떻게 나눠 써야 조금 더 오랫동안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금융회사엔 이런 수요에 대응하는 상품이 거의 없습니다. 연금을 모으는 쪽에 특화된 타겟데이트펀드(TDF)는 있으나 연금을 인출하는 게 맞춰진 타겟인컴펀드(TIF)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설정액 규모도 적고 특성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유일한 TIF 상장지수펀드(ETF) TIGER 글로벌멀티에셋TIF의 경우 자산의 9할이 미국 채권과 주식으로 채워져 있는데 매달 지급되는 분배금 수익률은 주가 대비 약 3.5%로 눈에 띌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한정된 재원을 인출하는 데 전용 상품의 유무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각자가 준비한 종잣돈 규모와 목표로 하는 생활비 및 기간을 위한 목표수익률, 그에 맞춘 대응이 핵심입니다.
가계의 소비지출은 40대에 정점을 지나 50대엔 크게 감소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활동 범위 축소 등에 따라 지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세대주가 50대인 가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380만원, 60대는 210만원 수준인데요. 60대에 맞춰 연 2520만원을 쓴다고 가정하고, 만 55세부터 최소한 국민연금 수령 개시 때까지 10년 동안 버티려면 얼마의 수익률을 올려야 하는지 역산하면 됩니다.
연금자산 1억원, 2억원, 3억원을 매달 동일 금액으로 인출해서 생활비로 충당하는 경우, 연 5% 수익률을 가정하면 각각 매달 105만원, 211만원, 316만원씩 인출할 수 있습니다. 연 5%라면 은행 예금이율보다는 훨씬 높지만 연 5% 이상 배당하는 주식 종목이 많고 채권시장에도 연 5%를 기대할 수 있는 채권도 있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정액 인출하는 방법은 수익률이 흔들릴 때 즉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 연금 종잣돈이 크게 깎일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률로 인출하자니 생활비가 부족한 시기 있을 것입니다. 정액, 정률, 증액, 감액 등 각 인출법이 갖는 장단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1억+일자리로 국민연금 받을 때까지
그런데 1억원 연금을 나눠 쓰자니 정액, 정률이 문제가 아니라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너무 적습니다. 모은 돈이 그것뿐이라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갖고 있는 집에 손을 대기 싫다면 결국 재취업이 필수입니다.
연금 적립금 1억원을 그냥 헐어서 쓰면 최소 생활비로 절약해도 계좌는 불과 4년 만에 바닥이 납니다. 대신 최저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구해 만 64세까지 일하면서 1억원 재원을 함께 활용할 경우 연 2% 수익률만 가정해도 만 64세 시점 연금자산이 1억3068만원까지 불어나 있을 겁니다. 여기엔 물가가 연 3%씩 상승해 소비지출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전제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이 정도면 65세에 손에서 일을 놓아도 국민연금을 더해 일상을 꾸리기가 한결 나을 것입니다. 최저임금 일자리가 1억원 가치보다 크다는 것은, 재취업 없이 연금 2억원을 수령할 경우 62세에 연금이 동난다는 사실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운용수익률을 연 6%까지 높일 수 있다면 상황은 조금 더 나아집니다. 연금 1억원과 함께 일을 한다면 64세 시점엔 1억8956만원까지 불어나게 됩니다. 반면 같은 수익률이라도 일하지 않고 2억원 자산을 나눠 인출하면 64세엔 이미 마이너스로 전환됩니다. 그만큼 일자리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3억+연 8%’ 고민 해결
만약 연금 재원이 3억원에 달하고 이를 연 8% 수익률로 운용할 수 있다면 문제는 좀 더 수월해집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3억원을 연금저축과 IRP로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퇴사하면서 받는 퇴직금을 IRP 계좌로 수령해 퇴직연금으로 활용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연금 자산 3억원을 연 8%로 운용할 수 있다면, 연 3% 물가상승률을 반영해도 만 78세까지는 계좌가 바닥나지 않습니다. 79세에 마이너스가 되는데요. 물론 최소 생활비를 가정한 전제이지만, 국민연금 수령을 최대 5년 미뤄도 70세부터는 함께 쓸 수 있어 훨씬 나을 겁니다. 또한 국민연금 수령을 뒤로 미룰 경우 연 7.2%씩 연금액이 증액되는 혜택도 얻을 수 있습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가계가 연수익률 8%로 굴리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하겠지만, 1400조원을 운용하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국민연금도 지난 20년간 연평균 7.0% 성과를 기록했다”며 가능한 수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버티는 데 중요한 건 모아둔 연금 종잣돈 규모와 앞으로의 운용수익률, 특히 재취업 일자리입니다. 연금 수령과 함께 노후 생활비 성격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는 일은 후순위 고민거리입니다.
도움말: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