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경 기자] 다음달부터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이 본격 시행되면서 시가총액 8조원 규모 국내 증시 상장사 219곳이 퇴출 위기에 놓였습니다.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하는 불장 속에서도시장의 온기가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한 가운데, 동전주를 보유한 소액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장폐지가 현실화하면 투자금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매출·이익·자산 등 기업의 펀더멘탈과 무관하게 주가와 시가총액만으로 기업을 '저성과'로 낙인찍어 퇴출하는 것은 기업의 본질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국내 증시 상장사 중 주가가 1000원 미만인 종목은 총 219개로 전체 상장사(2877개)의 7.6%에 달합니다. 시장별로는 코스닥 상장사가 148개로 가장 많았고 코스피 42개, 코넥스 29개 순이었습니다. 이들 동전주의 시가총액은 코스닥 5조 5075억원, 코스피 2조 4413억원 등으로 코넥스까지 합하면 8조원을 훌쩍 넘습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증발할 위기에 처한 것은 한국거래소가 지난 4월 예고한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이 다음달 1일부터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낮은 종목들이 변동성이 크고 이른바 '세력'의 투기 대상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던 게 상장 규정을 개정한 배경입니다. 개혁안에 따르면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 주가 1000원 미만, 반기 기준 완전자본잠식, 최근 1년간 공시벌점 누적 10점 등 4대 요건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됩니다. 특히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중 45거래일 연속으로 1000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됩니다.
유예기간 등을 고려하면 이르면 올해 4분기부터 실제 퇴출 종목이 무더기로 쏟아질 수 있습니다. 이번 규정은 요건이 충족되는 즉시 상폐 사유가 발생하므로, 다른 사유와 달리 별도의 이의신청이나 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 심의·검토 절차 없이 퇴출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하는 불장 속에서도 동전주가 다수 존재하는 가운데 소액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대형주 쏠림 탓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달 들어 상장 종목 2871개 중 상승한 종목은 447개에 그쳤지만 하락한 종목은 2299개에 달했습니다. 반도체 대형주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로 수급이 집중되는 사이 중소형주는 소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액투자자들은 실제 상장폐지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동전주로 분류되는 것 자체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재라고 우려합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시가총액 기준 강화가 기업 규모와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제도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됐습니다. 청원인은 "시가총액 미달 대상 기업 중 매출 500억원 이상이 253개사, 영업이익 흑자기업이 231개사에 달한다"며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까지 시가총액 하나만으로 퇴출 대상으로 내모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거래소가 코스닥 40억원·코스피 50억원이던 시가총액 기준을 코스닥 300억원·코스피 500억원으로 10배 상향하면서 단계적 시행을 약속했지만 1단계 시행 후 6주 만에 일정을 앞당겼다"며 "이는 정상 기업도 이행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기습적 퇴출 명령"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상장사들의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여러 주식을 하나로 합쳐 주당 가격을 올리는 '주식병합'을 공시한 기업은 지난 2월부터 이달 19일까지 219개사에 달해 전년 동기(9개사) 대비 24배나 급증했습니다.
위지윅스튜디오(299900)와
엔피(291230) 사례처럼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려 시가총액 기준을 충족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선 올해 상장폐지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우세합니다. 거래소는 올해 코스닥 상장폐지 대상 기업만 100~220개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닷컴버블이 꺼지며 역대 최대 퇴출을 기록했던 2000년(127개 종목 상폐)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시가총액 요건은 향후 더욱 강화될 예정입니다. 코스닥 기준은 다음달 1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오른 뒤 2027년에는 300억원까지 상향됩니다. 코스피 역시 다음달 300억원에서 내년 1월 500억원으로 문턱이 높아집니다.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 (사진=한국거래소)
김현경 기자 kh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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