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진열되지 않은 이야기)②"청춘 갈아 넣었는데 남은 건 철제 집기뿐"
2026-07-03 16:26:28 2026-07-03 16:26:28
[뉴스토마토 차철우·이혜지 기자] 법원이 3일 홈플러스 회생계획을 폐지하면서 회사의 정상화 가능성은 한층 더 불투명해졌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섰습니다. "청춘을 다 갈아 넣었는데...회사가 사라지면 제 30년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25년간 홈플러스에서 근무한 마수경(56)씨의 말은 회생절차가 현장에 남긴 상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손님들로 붐비던 통로는 텅 비었습니다. 형광등이 꺼진 매장엔 철제 진열대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지난 5월 영업을 멈춘 홈플러스 면목점에서 마수경씨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25년동안 출근했던 직장이었지만, 그날의 면목점은 더 이상 자신이 알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밝았던 통로가 캄캄하더라고요. 제 미래도 저렇게 암울한 건 아닐까 싶었어요."
 
25년간 홈플러스에서 근무한 마수경씨. (사진= 이혜지 기자)
 
회사는 멈췄고, 삶은 흔들렸다
 
2000년 까르푸 시절 입사한 수경씨는 홈플러스에서 청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계산대에서 시작해 생활문화 부문 영업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가정·주거·스포츠용품을 진열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팔릴까'를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면목점에서 만난 남편도 홈플러스 직원입니다. 두 사람 모두 20년 넘게 생계를 홈플러스 하나에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기업회생 절차와 함께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월8일 갑작스러운 휴업 통보가 내려졌고, 이틀 뒤인 10일, 면목점 영업은 멈췄습니다. 수경씨는 현재 상봉점으로 지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는 7일부터는 정식 발령을 받아 출근할 예정입니다. 정년까지 면목점에서 일하겠다는 꿈은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회생절차 이후 생활도 달라졌습니다. 월급 지급이 늦어지면서 보험을 해지했고, 대출 대신 가족 도움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퇴직금 적립률도 70% 수준에 머물러 노후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졌습니다.
 
수경씨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금융자본 중심의 경영에서 찾았습니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벌면 다시 투자하고, 더 좋은 상품을 들여와 손님을 끌어야 하는데 그런 게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고 이윤만 남기려는 경영이었습니다." 실제로 매장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컬러 프린트 사용을 금지했고 노후 시설 보수도 미뤄졌습니다. 승진과 임금도 사실상 멈췄습니다. 수경씨는 "매출은 나왔는데 현장으로 돌아온 건 없었다"며 "회사는 점점 늙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MBK파트너스를 향해 "법적인 책임이 없을 수는 있어도 도의적인 책임은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경영권을 행사한 것도 MBK였고, 중요한 결정은 모두 MBK 승인이 있어야 움직였다"며 "모든 것을 통제해놓고 이제 와 책임이 없다고 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메리츠금융을 향해서도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수경씨는 "메리츠는 담보를 쥐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파산해도 손해 볼 것이 없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퇴직금 적립률이 70% 수준에 머문 채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버티고 있는데, 정작 이해관계가 가장 큰 금융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정부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세금으로 무조건 회사를 살려달라는 뜻은 아니다"라면서도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뒤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제도를 다시 살펴보고, MBK와 메리츠가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커지는 현장 불안…동료들은 하나둘 떠났다"
 
법원의 회생계획 폐지 결정은 현장 노동자들이 몇 달 동안 막연하게 품고 있던 불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직원들은 그동안 "7월3일 어떤 결정이 날까", "퇴직금은 받을 수 있을까"를 만나면 가장 먼저 주고받았습니다. 작은 소문 하나에도 회사 전체가 술렁였고, 휴게실에 모이면 회생 절차와 폐점 이야기만 오갔습니다.
 
지난해 12월 1일 폐점한 홈플러스 동대문점. (사진=연합뉴스)
 
이미 회사를 떠난 동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거나 성수기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주를 돌보기 위해 퇴직을 선택한 직원도 있습니다. 20년 넘게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20년 넘게 한 직장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찾아 흩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경씨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는 "일은 새로 배우면 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며 "20년 넘게 함께했던 동료들과 헤어져 각자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인간관계를 만들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수경씨 역시 상봉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면목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까르푸 시절부터 함께 투쟁하고, 파업을 버티고, 결혼도 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당시 함께 입사한 동료들과 꾸준히 모임을 이어가며 서로 안부를 묻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끼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끈끈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경씨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면목점은 사라졌지만 홈플러스만큼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홈플러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바라지 않아요. 그러면 제가 몸담았던 30년도 함께 없어지는 것 같잖아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저기가 내가 다녔던 회사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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