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뇌세포 죽이는 '비밀의 열쇠' 찾았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진, 새로운 사멸 기전 '카리오프토시스' 규명
독성 단백질 쌓이면 세포핵 쪼그라들어 파괴
세포 죽음 유도하는 '분자 스위치' 차단 성공
2026-07-08 09:54:55 2026-07-08 09:54:55
과학자들이 치매에서 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여 뇌 세포를 죽이는 메커니즘을 설명해 주는 새로운 경로를 발견해서 새로운 치료의 길을 열었다. (사진=Gemini 생성)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그동안 현대 의학이 풀지 못했던 '치매 환자의 뇌세포 사멸 수수께끼'를 해결할 결정적 실마리가 발견됐습니다. 치매 환자의 뇌 속에 독성 단백질이 쌓인 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뇌세포가 파괴되는지 그 전제 과정을 설명하는 새로운 세포 사멸 기전이 규명된 것입니다. 이번 발견으로 인류의 난치병으로 꼽히는 알츠하이머와 전두측두엽 치매(FTD)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과 영국 치매연구소(UK DRI) 공동 연구팀은 독성 단백질 축적이 어떻게 뇌세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지 설명하는 새로운 세포 사멸 경로인 '카리오프토시스(Karyoptosis)'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게재됐습니다.
 
10년 연구의 결실, 베일 벗은 뇌세포 사멸의 '미싱 링크'
 
알츠하이머나 전두측두엽 치매, 루게릭병(ALS) 같은 퇴행성 뇌질환 환자의 뇌에는 예외 없이 유해한 독성 단백질이 뭉쳐서 쌓입니다. 의학계는 이 단백질 찌꺼기가 뇌세포를 죽이고 기억력 감퇴를 유발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으나, '단백질 축적'이 '세포 사망'으로 이어지는 정확한 중간 과정은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기존의 세포 자살(아포토시스) 이론 등으로는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뇌세포 손상을 전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및 전두측두엽 치매로 사망한 환자 28명의 뇌에서 추출한 뇌세포 3000개를 첨단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정밀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치매 환자의 뇌세포에서 아주 특이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독성 단백질이 세포 내에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세포의 유전 정보(DNA)를 담고 있는 핵심 기관인 '세포핵'의 바깥막이 불안정해지면서 핵 자체가 서서히 쪼그라들다가 결국 산산조각이 나는 현상이 관찰된 것입니다. 연구팀은 세포핵(Karyo)이 파괴되며 죽음에 이르는 이 고유한 과정을 '카리오프토시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실제 알츠하이머 말기 환자의 대뇌 피질 세포를 조사한 결과, 전체 뇌세포의 무려 35%에서 이 카리오프토시스 현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건강한 일반 노인의 뇌세포에서는 이 비율이 15%에 불과했다.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치매 환자의 뇌 속에서 세포를 죽이는 주범을 마침내 현장 검거한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세포핵 파괴하는 '분자 스위치' 끄면 치매 멈춘다"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카리오프토시스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일종의 '분자 스위치'도 찾아냈습니다. 세포 내에서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효소인 'p38 MAP 인산화효소(kinase)'가 세포핵의 구조를 유지하는 '라민B1(LaminB1)' 단백질과 상호작용하면서 핵을 붕괴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쥐의 신경세포를 이용해 이 'p38' 분자 스위치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차단하자, 독성 단백질이 쌓여도 세포핵이 파괴되지 않고 뇌세포가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치매의 독성 진행 과정을 인위적으로 끊어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 연구의 제1저자인 레베카 캐스터턴(Rebecca Casterton) 영국 치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치매 환자가 겪는 증상의 근본 원인인 '뇌세포 소실'의 상세한 로드맵을 펼쳐 보인 것이다. 세포가 파괴되는 길목을 차단함으로써, 치매의 원인을 공략할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치매 완치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이번 연구는 영국 치매연구소와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알츠하이머 리서치 UK(ARUK) 등 세계적인 치매 연구 기관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10년간 진행된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입니다.
 
의학계는 이번 발견이 치매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치매 치료제들이 이미 쌓인 독성 단백질을 깎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단백질이 쌓이더라도 세포가 죽지 않도록 방어막을 치는 방식의 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인체 내에서 'p38' 효소와 '라민B1' 단백질의 결합을 선택적으로 방해하는 신약 물질을 개발해 임상시험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사라 로드리게스(Sara Rodrigues) 알츠하이머 리서치 UK 박사는 "단백질 축적이 어떻게 뇌세포 사멸로 이어지는지 밝혀낸 것은 치매 완치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기념비적인 성과"라며 "치료 골든타임을 획기적으로 넓혀줄 신약 개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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