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기후변화의 전령사 팔색조
2026-07-15 10:34:51 2026-07-15 14:24:09
"호이호잇-, 호이호잇-" 어두컴컴하고 습한 활엽수림 사이로 맑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깊은 숲의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이 소리, 바로 여덟 가지 빛깔을 낸다는 팔색조(八色鳥, 천연기념물 제204호)의 목소리입니다.
 
장마철 제주도나 남해안의 외딴섬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이 귀한 새가, 올해도 중부지방 곳곳에서 번식에 성공했습니다. 팔색조가 중부 이남 지역까지 올라와 번식지를 넓히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귀한 새를 가까이서 보게 되어 기쁘다'는 감상에만 머물 일이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요. 과거 기록을 보면 이들은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 살다가 여름철 남부 도서 지방을 아주 조심스럽게 찾던 여름철새였습니다. 
 
낙엽 속에서 지렁이를 사냥해 둥지로 날아오는 팔색조.
 
그런 팔색조가 중부지방에 둥지를 틀었다는 건, 우리 한반도의 기후가 확실하게 아열대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한반도가 더 뜨거워지고 습해지면서, 이 녀석들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위쪽으로 점점 확장된 것이죠. '기후변화의 전령사' 역할을 팔색조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녀석들에게 유독 혹독한 한 해였습니다. 유난히 장마가 늦게 시작되는 바람에, 먹이 구하기가 영 마땅치 않았거든요. 팔색조는 낙엽이나 덤불 속을 파헤쳐 주로 지렁이를 잡아먹고 사는데, 비가 적으면 땅이 굳어버리니 지렁이들이 땅속 깊이 숨어버린 겁니다. 새끼들을 키워내야 하는 어미 새가 굳은 땅을 파헤치며 지렁이를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 애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팔색조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여덟 가지 선명한 빛깔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몸길이는 18cm 정도로 작지만, 머리가 크고 목과 꼬리가 짧아 숲속을 걸어 다닐 때 보면 꽤 야무진 인상을 줍니다. 활엽수림의 어두운 땅 위에서 비교적 긴 다리로 통통 튀어 다니며 생활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들의 번식 생태를 들여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팔색조는 주로 바위 위나 나무줄기에 나뭇가지를 촘촘히 쌓고, 그 위에 이끼와 풀을 덮어 둥지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든 둥지는 주변의 이끼 낀 바위와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됩니다. 게다가 어미 새 한 마리가 겨우 드나들 정도로 입구를 아주 작게 구멍만 내놓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속에 새끼가 있는지 없는지 귀신도 모를 지경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천적인 뱀을 막아내는 녀석들만의 비법입니다. 바위나 낮은 곳에 둥지를 틀다 보니 구렁이나 누룩뱀의 습격에 늘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요. 팔색조는 이를 막기 위해 둥지 주변과 입구에 뱀이 극도로 싫어하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동물들의 오물이나 배설물을 잔뜩 발라둡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미관상 썩 좋지 않고 냄새도 고약하지만, 연약한 새끼를 지켜내기 위한 팔색조만의 대단히 영리하고 치열한 생존 전략이자 눈물겨운 모성애인 셈입니다.
 
숲속에서 지렁이을 사냥한 팔색조가 둥지에 들어가지 전에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선조들도 이 아름다운 새를 알아봤던 모양입니다. 조선 시대의 여러 문집이나 고지도, 자연 기록 속에서 '무지개 색을 닮은 새'나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새'에 대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팔색조에 대한 역사적 흔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우리 땅을 찾아와 신비로움을 자아냈던 존재였던 것이죠.
 
이 작은 새가 감내하는 여정 또한 경이롭습니다. 이들의 주요 서식지는 저 멀리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 일대입니다. 겨울 동안 그곳 열대우림에서 지내다가, 5~6월이 되면 번식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이곳 한반도까지 찾아옵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다시 그 머나먼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돌아가지요. 
 
팔색조는 정말 '밀당'의 고수입니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 둥지를 떠날 때(이소)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미의 울음소리에 반응해 얼굴을 밖으로 내밀기 시작하거든요. 그전에는 둥지 속에 숨어 먹이만 받아먹으니 형체를 보기조차 힘듭니다. 결국, 녀석들이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고 둥지를 떠나는 번식기 마지막 3~4일 동안이 카메라에 생생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숲속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며 위장막 속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 보면, 이 짧은 찬스가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올해는 늦은 장마로 중부지방에 터를 잡은 팔색조들이 번식이 다소 늦고 번식 기간에 먹이 사냥에 그만큼 고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끼들이 모두 무사히 자라 보르네오섬까지 안전하게 날아가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묵묵히 제 삶을 개척해 나가는 팔색조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환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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