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특혜 채용 논란부터 조직 운영의 부실, 선거관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까지 국민의 신뢰를 흔드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선관위 개혁의 필요성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선관위를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포함시키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원포인트 개헌’까지 거론될 만큼 한때는 선관위 개혁 논의가 뜨거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련 논의도 점차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습이다. 그러나 논의가 잦아들었다고 해서 개혁의 필요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독립성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만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 개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선관위 논의는 우선 개혁의 방향부터 차분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헌법 차원의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컨대 대법원장의 선관위원 지명권과 같은 문제는 헌법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선관위를 둘러싼 문제의 상당 부분은 헌법 조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직 운영과 책임 체계의 미비에서 발생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를 무시한 채 선관위 개혁을 개헌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헌법 개정은 일반 법률 개정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회적·정치적 합의를 필요로 하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선거제도나 권력기관 개편 문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선관위 개혁이라는 큰 방향에는 공감하더라도, 누가 선관위원을 추천할 것인지, 감사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독립성과 견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릴 수 있다. 결국 개헌 논의가 실제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합의의 문턱이 결코 낮지 않다. 자칫 개헌 논의에만 매몰될 경우, 당장 가능한 제도 개선마저 뒤로 미뤄질 우려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과 입법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짓는 일이다. 헌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하되, 현행 헌법 아래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지체 없이 입법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개혁의 성패는 개헌 여부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얼마나 신속하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온 선관위원장의 상임화와 현직 법관의 선관위원 겸직 금지 주장이다. 이들은 선관위 개혁을 둘러싼 다양한 입법적 대안 중에서도 현행 헌법 체계 아래에서 비교적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제들로 평가된다. 특히 현재 선관위원 대부분은 비상임으로 활동하고 있어 위원회가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선거관리의 주요 정책과 조직 운영은 사실상 사무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위원회는 이를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역할에 머무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위원장을 상임직으로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위원 전원의 상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논란을 빚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겨냥한 개혁 방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경기 과천시에 위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사진=뉴시스)
현직 법관의 선관위원 겸직 금지 역시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개선 과제다.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현행 구조는 재판 업무와 선거관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만큼 어느 한쪽에도 충분히 집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더욱이 선거소송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대법원과 선관위가 인적 구성 측면에서 연결되어 있는 구조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은 반드시 현직 법관의 참여를 통해서만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양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물들이 선관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선관위 개혁의 목표는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책임성과 전문성을 함께 강화하는 것이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거관리다. 이를 위한 선관위 개혁의 출발점은, 많은 사람이 수긍하는 문제들에 대해 지금 가능한 입법부터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데 있다.
신의철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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