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할 수 있다’와 ‘해도 된다’ 사이
2026-09-08 06:00:00 2026-09-08 06:00:00
“우리는 커다란 산과 싸울 수 없어요. 산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산이 안 된다고 하면 기다리고 산이 허락하면 그때 출발하는 거예요.”
 
다큐멘터리 영화 <마운틴 퀸: 락파 셰르파>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열 차례 오른 락파 셰르파가 들려주는 산의 철학이다. 그에게 에베레스트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신이자 어머니이며 인간에게 힘을 주는 존재다. 정상에 오른 뒤에도 그는 승리를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히 당신을 지르밟습니다’라며 용서를 청한다.
 
그의 태도는 기존의 많은 산악 영화의 시선과 대조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도전에 성공하는 주인공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대부분의 산악 영화가 보여준 내용이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겸손과 겸허함보다 자연을 정복한 인간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험준한 산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라면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법하다. 아무나 등정(登頂)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제 고산 등반에서 정상에 오르는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정상 앞에서 돌아설 수 있는 판단력이다. 오랜 시간을 준비했거나 막대한 비용을 들였더라도 기상과 산의 조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등반을 포기해야 한다. 정상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락파에게도 정상에 대한 욕망은 있다. 열 번이나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이니 누구보다 강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욕망보다 위에 있는 원칙이 있다. 할 수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와 ‘해도 된다’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격이 있다. 법이 허용하는가, 능력이 있는가, 기회가 주어졌는가는 ‘할 수 있다’의 문제다. ‘해도 된다’는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공동체의 원칙과 신뢰에 부합하는지를 묻는다. 윤리는 법이 금지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 허용한 곳에서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 시작된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용혜인 의원의 의원직 유지 논란도 이 질문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법적으로 가능한 것이 공직 윤리보다 중요한 것인가.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되는 것인가. 
 
한국 정치에는 ‘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자주 면죄부처럼 등장한다. 위법이 아니면 문제없다는 논리는 법과 윤리 사이의 광대한 영역을 지워버린다. 시대를 막론하고 나랏일에 무게가 덜한 적은 없는데 나랏일하는 사람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이유다.
 
정치인에게 권력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욕망이 아니라 욕망의 한계다. 나아가 욕망과 탐욕의 구분이다. 욕망은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다. 탐욕은 그것을 위해 자신보다 중요한 가치를 밀어내는 것이다. 공직자라면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 중요한 가치가 분명해야 한다. 자리보다 공익이, 정치적 이해보다 공적 신뢰가 앞서야 한다. 이것은 용혜인 의원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자주 강조했던 말이기도 하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상에 오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다. 권력을 획득하고 지키는 데 능숙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공직을 맡으려는 이들의 대다수가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기에만 바쁘고 ‘내가 여기까지 올라가도 되는가’를 묻지 않는다.
 
에베레스트에 열 번이나 올랐어도 락파 셰르파는 산을 정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산이 자신을 받아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산이 허락하지 않으면 기꺼이 돌아선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도 그래야 한다. 오를 수 있지만 오르지 않고, 가질 수 있지만 내려놓는 태도 말이다.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하면 국민에 의해 끌려 내려오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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