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 불편 견디다 못해, 직접 버스노선 조정안 만든 울산 고교생들
설문·현장답사·토론 거쳐 정책제안…버스회사 재무제표까지 분석
김상욱 시장 “민주주의 실천한 것”…내년 노선 개편 반영 약속
2026-07-29 15:41:22 2026-07-29 20:27:00
[울산=뉴스토마토 하주화 기자] “저희가 직접 만든 버스노선 개편안입니다.” 29일 울산 북구 동천고 과학실에서 학생들이 김상욱 울산시장 앞에 정책제안서를 펼쳐 들었습니다. 김 시장이 2024년 12월 노선 개편 이후 버스 통학이 불편해졌다는 민원을 청취하기 위해 학교를 찾은 자리였습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조정안 마련에 참여한 48명 중 9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단순히 버스를 늘려달라는 민원과는 달랐습니다. 북구지역 7개 학교 학생 48명이 약 넉 달간 설문조사와 현장답사, 토론을 거쳐 완성한 정책제안서였습니다. 버스 도착 시각과 배차 간격, 이용객 수는 물론 버스회사의 재무제표까지 분석했습니다. 학생들이 이른바 ‘북두칠성 프로젝트’를 통해 도출한 성과였습니다.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대목은 등하교 시간과 버스 운행 시각의 불일치였습니다. 동천고에는 매곡·신천·호계 등 동천강 건너편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많지만 연결 노선이 제한적입니다. 일부 버스는 수업 종료 시각과 맞지 않았고, 특정 시간대에 승객이 몰리면서 다음 정류장의 학생과 주민이 타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학생들은 북구12번은 동천고 인근 정류장 도착 시각을 오후 3시40분과 4시40분으로 바꿔 하교 시간에 맞추자고 제안했습니다. 화봉고 통학노선인 북구07번은 등하교 시간대 배차 간격을 줄이거나 순환31·32번이 학교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또 무룡고 학생들이 이용하는 순환32번의 배차 간격을 단축해 하교 시간대 과밀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매곡권역에서는 북구01번을 매곡고와 화봉고, 신천동, 동천고를 잇는 순환형 노선으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화봉고와 무룡고 학생들이 함께 이용하는 482번은 운행 간격 단축을 건의했습니다. 다만 다른 노선보다 이용객이 적다는 점을 감안해 수요가 많은 구간부터 투입하는 선택지까지 열어뒀습니다. 
 
제안서를 살핀 김 시장은 놀라워하며 추진 배경을 물었습니다. 프로젝트의 단초가 된 것은 지난해 동천고에서 독서 교과 자유주제 탐구 수업이었습니다. 동천고 3학년인 김민준·장하늘 학생이 시내버스 노선 개편 이후 겪은 통학 불편을 의제로 올렸고, 이어 교내 설문을 벌여 비슷한 어려움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이를 실제 정책 개선안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교사의 제안이 더해지면서 교실 안에서 시작된 탐구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으로 전환됐습니다.
 
김상욱 울산시장이 29일 동천고등학교 과학실에서 북구 관내 고등학생들을 만나 직접 전달받은 시내버스 관련 정책제 안서를 함께 보면서 불편사항과 개선방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동천고에서 싹튼 문제의식은 곧 학교 담장을 넘었습니다. 교사들이 북구지역 다른 학교 학생회와 만날 자리를 마련했고, 울산시교육청의 민주시민교육 사업인 ‘이음터학교’ 지원도 받았습니다. 지난 3월 북구 7개 학교 회장과 부회장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북두칠성 프로젝트’가 출범했습니다. 북구의 ‘북’과 참여 학교 7곳을 상징하는 ‘칠성’을 합친 이름입니다.
 
각 학교 대표들은 통학 방식과 불편한 노선, 필요한 개선책을 조사한 뒤 자료를 한곳에 모았습니다. 학교와 거주지역에 따라 처지가 다른 만큼 이용 수요와 시급성, 실현 가능성을 따져 공동의 대안으로 가다듬었습니다. 조직도 역할에 맞춰 세분화했습니다. 학교별 조사와 별도로 경영·경제, 정치·행정·법, 미디어, 통계 등 4개 팀을 꾸렸습니다. 통계팀은 버스 이용 실태와 울산시가 내놓은 관련 자료를 분석했고, 미디어팀은 학생과 시민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경영·경제팀은 대우여객의 2025년 재무제표를 살폈고, 정치·행정·법팀은 이들 자료를 토대로 노선 개선안과 울산형 준공영제 도입 방안을 완성했습니다.프로젝트 총괄을 맡은 김민준 학생은 “우리도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정책 참여의 주체라고 생각했다”며 “막무가내로 주장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팀을 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논의 범위는 등하굣길을 넘어 청소년의 생활권 문제로도 넓어졌습니다. 박혜빈(달천고 3학년) 학생은 “개편 전에는 달천에서 울산 도심인 삼산까지 20∼30분이면 갔지만 지금은 40분 이상 걸린다”며 “학교 밖에서 이동할 때 겪는 불편도 개선안에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의 시선은 개별 노선을 넘어 버스 운영체계로도 향했습니다. 울산은 현재 민간업체가 버스를 운행하고 발생한 적자를 시가 보전하는 적자지원형 민영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재정 부담은 커지는 반면 시민 수요가 노선 결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진단입니다. 이에 행정의 조정 권한과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울산형 준공영제’를 장기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김 시장은 이 같은 활동을 생활 속 민주주의의 실천으로 평가했습니다. 김 시장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고 혼자 풀기 어려운 공동체의 문제를 친구들과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지금까지 본 어떤 버스노선 개편 보고서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발로 뛰어 만든 연구”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학생들의 건의 사항을 내년에 예정된 시내버스 노선 개편에 적극 반영하도록 교통 담당 부서에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북두칠성의 활동은 이번 정책 건의로 끝나지 않습니다. 2기 총괄을 맡을 김희애(동천고 2학년) 학생은 “수용되지 않은 과제는 2기에서 계속 추진하고 권역도 확대내 나가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울산=하주화 기자 j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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