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당 제2단계(Second Governing Phase)에서 더불어민주당 제2기 당대표로 개혁 일변도의 정청래보다는 통합론자인 김민석이 된 것은 일단 다행일 수 있겠다. 그동안 민주당 계열의 집권 기간이 계속되지 못하고 졸지에 단절되어 왔던 것은 개혁의 성과 부족보다는 통합 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 구절에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라는 경구가 있다. 민주당 상당수 인사들이 통합이란 용어를 종종 미사여구로 사용했을 뿐, 당내 개혁 원리주의자들의 논리에 무기력했다.
김민석 대표가 봉합 아닌 통합의 독한 길을 갈 수 있을까. 봉합이 갈등을 덮는 것이라면, 통합은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경쟁했던 세력을 제도 안으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2015년 2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문재인-박지원 당대표 경선은 단순한 후보 간 경쟁이 아니었다. 통합 아닌 봉합의 문을 열면서, 향후 민주당 진영이 ‘분당과 집권 후 바로 실권’이라는 정치적 참사를 겪었던 아픈 역사였다.
출마 단계부터 문재인은 ‘이기는 정당’, 박지원은 ‘당권·대권 분리’를 내세웠다. 언론은 이를 친노–비노, 영남–호남, 노무현–김대중 계보의 대결로 해석했다. 경선 과정에서 대선 패배 책임, 당권·대권 독점, 호남 홀대, 대북 송금 특검 문제가 차례로 불거졌다. 특히 대북 송금 특검을 놓고 박지원은 문재인의 설명을 “거짓말”이라고 했고, 문재인은 “네거티브를 하지 말라”고 맞섰다.
전대를 엿새 앞두고 국민·일반당원 여론조사의 ‘지지 후보 없음’을 유효표에 포함할지를 놓고 충돌했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문재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자 박지원은 “친노의 횡포”라며 경선 보이콧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후 TV 토론에서 ‘비열하다’와 ‘저질 토론’이라는 표현이 오갔다.
문재인은 45.30%, 박지원은 41.78%를 얻어 불과 3.52%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박지원은 결과에 승복했고, 문재인은 “박지원의 관록과 경륜을 업고 가겠다”며 ‘용광로 정당’을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닷새 뒤 첫 회동에서 박지원은 대북 송금 특검과 경선 규칙 논란에 대한 사과, 호남을 배려하겠다는 인사 약속의 이행을 요구했다. 당시 언론은 이를 ‘절반의 화해’라고 평가했다.
그 후,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선거 협력을 약속했지만, 언론도 이를 ‘갈등 봉합’이라고 표현했다. 재·보선 전패 뒤 박지원과 동교동계는 문재인 책임론을 다시 제기했고, 갈등은 인사와 혁신 문제로 확산됐다. 결국 박지원은 2016년 1월22일 탈당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8회 국회(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정청래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와 같이 11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의 핵심 쟁점들과 비교해 볼 때, 이기는 정당과 당원 주권의 대립·당권과 대권 문제·계파 및 충성과 폐족의 언어·경선 규칙 논란 등이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봉합의 행태가 승복 선언과 악수, 일회성 회동과 선거 지원, 당직 몇 자리의 배분으로 나타나는 반면 통합은 상시적 갈등 조정과 공동 의사 결정, 권한과 책임 및 정보의 실질적 공유, 이견을 제도 안에서 다루는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민석 대표는 통합의 도덕적 당위성보다는 ‘왜 통합해야 하는가’를 정치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 통합 정치의 성공 조건을 제시한다면, 무엇보다도 ‘경쟁은 선거일까지, 통합은 당선 즉시’라는 원칙을 전방위적으로 조기 구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파정치를 정책경쟁 정치로 전환하는 것이고, 세계적 유례가 없는 진정한 당원주권정당을 정착시키려면 당원 교육과 관리에 모든 당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은 개혁보다 어렵고 당대표를 바쁘게 할 것이다.
박상철 (사)미국헌법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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