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돌봄 로봇은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런데 결정은 누구의 몫인가
제22회/ 최홍규 연구위원(EBS)·미디어학 박사
2026-08-27 14:48:42 2026-08-27 14:48:42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로봇이 곁을 지켜주는 밤이 온다. 저녁 8시, 요양시설의 한 방. 할머니는 침대맡에 놓인 작은 로봇에게 오늘 손주와 통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봇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재밌었겠네요, 손주 이름이 뭐였죠"라고 되묻는다. 할머니의 표정이 풀어진다. 옆방 간호사 스테이션의 모니터에는 이 대화가 끝난 시각과 할머니의 목소리 톤 변화가 기록으로 남는다. 말벗이 되어준 로봇은, 동시에 그 밤의 정서 상태를 데이터로 바꾸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는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돌봄 현장에 등장한 로봇을 다룬 연구는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었다. 중국 상하이교통대학교(Shanghai Jiao Tong University) 간호대학 연구진이 2026년 3월 발표한 논문은 그동안 나온 관련 연구 3만2000여편 가운데 조건에 맞는 59편을 추려 자세히 들여다봤다. 25종의 로봇이 등장했고, 그 가운데 페퍼(Pepper)가 59편 중 15편에서 다뤄져 가장 자주 연구된 기종이었다. 전체의 83%가 실험실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진 연구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이 결과를 그대로 믿기에는 아직 이르다. 59편 가운데 34편은 참가자가 25명도 안 되는 소규모 연구였고, 효과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방식, 즉 대상을 무작위로 나눠 비교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연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가능성은 뚜렷하지만 근거는 아직 얇은 상태라고 정리한다. 로봇이 외로움을 줄이고 기분을 개선한다는 보고는 쌓이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오래가며 어떤 사람에게 특히 유효한지는 아직 촘촘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돌봄 로봇을 둘러싼 기대가 근거보다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서적 효과의 불확실성과는 별개로, 또 다른 연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파고든다. 스페인 국립과학연구소(Spanish National Research Council, CSIC) 철학연구소가 2024년 7월 공개한 논문은 스페인에서 공공 자금으로 진행 중인 가정용 돌봄 로봇 프로젝트 '로브인(ROB-IN)'을 사례로 삼는다. 이 로봇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고령자의 집에 들어가 일상을 돕고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도록 설계됐다.
 
연구는 여기서 하나의 원칙을 강하게 못 박는다. 돌봄을 이유로 한 로봇의 개입이라 해도, 사용자 본인의 뜻을 거스르고 로봇이 대신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논문이 드는 예는 이렇다. 로봇은 소금을 줄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사용자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그 사실을 깜빡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알면서도 그냥 넘기기로 했다면 로봇은 그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의도로 상대의 뜻을 거스르는 이런 개입을 철학에서는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라 부르는데, 연구는 로봇이 사용자의 결정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작동할 경우 자율성 침해와 부당한 온정주의의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 로봇이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관찰과, 사생활을 침해하는 감시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 연구는 이 경계를 정할 권한이 결국 로봇이나 제조사가 아니라 사용자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권한을 슬그머니 넘겨받으려는 태도를 향해서도 분명히 선을 긋는다.
 
두 연구를 나란히 놓고 보면 돌봄 로봇을 둘러싼 질문의 결이 보인다. 로봇이 외로움을 줄여준다는 희망은 아직 굵은 글씨로 확정할 단계가 아니고, 로봇이 편리함을 안겨주는 그 순간 누군가의 사생활과 결정권은 함께 로봇의 손에 쥐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돌봄 로봇이 우리 곁으로 들어올 날,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로봇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닐 것이다. 이 로봇이 무엇을 관찰하고, 그 관찰을 누구에게 전달하며, 최종 결정을 누가 내리는가일 것이다. 편리함은 대개 이 세 가지 질문을 흐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낙상을 감지하는 센서는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감시망이 될 수 있고, 약 복용을 챙기는 알림은 돌봄이지만 반복되면 어느새 지시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전환은 대개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날 것이다. 로봇을 들이는 첫날부터 통제를 목적으로 설계하는 제조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편리함이 쌓이는 동안 결정권이 조금씩 사용자에게서 로봇으로, 혹은 그 로봇을 설계한 기업으로 옮겨가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돌봄 로봇을 집이나 시설에 들이게 될 사람이라면, 도입에 앞서 스스로 확인해볼 만한 질문이 있다. 이 로봇이 수집하는 정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지, 그 정보는 누구에게 전달될지. 내가 로봇의 권유를 거부했을 때 로봇은,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 거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인지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이 결정권이 슬그머니 가족이나 시설로 넘어가도록 만들어져 있지는 않을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로봇이라면, 아무리 정교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도 그것은 돌봄이 아니라 관리가 될 것이다.
 
로봇은 앞으로 밤마다 곁을 지켜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지켜볼지, 그 끝에서 무엇을 결정할지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끝까지 정해야 한다. 그 원칙을 놓치는 순간, 우리가 로봇에게 기대했던 편안한 노후는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자유를 내어준 노후가 되어버릴 것이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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