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사라진 기업 책임, '맹탕 국감' 된 유통가
2026-10-14 06:00:00 ㅣ 2026-10-14 06:00:00
올해 유통가는 어느 해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들여다봐야 할 사건이 많았다.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플랫폼의 거래 관행, 식품기업에서 반복되는 노동자 산업재해 사고, 홈플러스 회생에 따른 노동자, 협력업체·입점업체 피해, 식품업계 가격 담합 등 소비자와 유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굵직한 현안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실제 국감에서는 홈플러스 회생,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거래와 개인정보 유출, 설탕·전분당 담합 등이 주요 현안으로 잠깐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는 수준에서 그치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작 국감장에서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과 책임을 물어야 할 총수급 인사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서도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아니라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을 뿐이다. 지난해에도 김 의장의 국감 불출석이 논란이 됐지만 올해 증인 명단에서는 아예 빠졌다.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낸 후 조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부와 마찰을 빚었고, 급기야 한미 통상 관계에서 마찰의 불씨가 돼 지금까지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와 자료 제출 요구까지 거부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어깃장을 놓고 있음에도 정작 이번 국감에서는 딱히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6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브렛 앤소니 매티스 쿠팡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데 사과하고 후속 개선 조치를 설명했다. 그러나 국감장에서 확인된 것은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뿐이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 사고 발생과 사후 처리에 대해 경영진의 판단과 대응에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한 추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쿠팡 국감은 실무 책임자의 해명과 사과, 개선책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며,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곳까지는 닿지 못했다.
 
12일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는 주성원 쿠팡 총괄부사장이 증인으로 나와 공정위 현장조사 거부가 회사 차원의 판단이었는지,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집중 추궁을 받았다. 이에 대해 주 부사장은 구체적인 의사결정 주체와 책임 소재를 밝히지 않고 내부 논의를 거친 결정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반복했을 뿐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다.
 
신세계 역시 개인정보 보호와 플랫폼 관련 현안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정용진 회장이 확정 증인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스타벅스 관련 논란까지 올해 유통가에서 굵직한 이슈가 이어졌지만 정 회장이나 스타벅스 관계자는 현재 확정 명단에 끝내 오르지 못했다.
 
SPC도 마찬가지다. 계열사에서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가운데 허진수 부회장을 증인석에 세우지도 못했다.
 
국감의 목적은 기업인을 줄 세우는 데 있지 않다. 그렇다고 실무 임원 몇 명을 불러 현안을 확인하는 것으로 책임 규명이 끝나서도 안 된다. 사고와 논란이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투자·인력·안전·정보보호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은 누가 했는지, 문제가 발생한 뒤 경영진이 무엇을 바꿨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결국 올해 유통 국감이 단순히 기업 임원을 불러 형식적인 해명만 듣고 요식 행위마냥 자료 정도를 제출받는 수준에서 끝난다면, 국감은 또다시 기업의 ‘면피성 해명’을 듣는 자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사고와 논란의 구조적 원인을 짚고 재발을 막아야 할 국감의 본래 역할을 스스로 저버리는 셈이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 국감이 기업들의 경영 관행을 바꾸는 계기는커녕,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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