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서울 강남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집주인과 매수자 간 눈치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 부담을 우려해 집을 팔려는 소유자는 늘고 있지만, 대출 규제와 금리 부담에 추가 가격 조정 기대까지 겹치면서 매수자들은 선뜻 계약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호가를 크게 낮춘 급매물조차 주인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권 일부 고가 아파트에서는 이전 실거래가보다 10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매수세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2차 전용 131.48㎡는 지난 7월 66억원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52억~53억원대 매물이 '초급매'를 내걸고 나와 있습니다. 집주인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도에 나서지만, 매수자는 가격이 더 내려갈 가능성과 정책 변화를 지켜보며 거래를 미루는 상황입니다.
버티기에 들어간 집주인도 적지 않습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론이 나빠 세제개편안이 쉽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12월까지 지켜보겠다는 집주인이 많다"며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차라리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수세가 얼어붙은 배경에는 세제개편안과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세제개편안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미국 국채금리 상승 등으로 금리 부담도 커지고 있다"며 "강남은 현금 보유 비중이 높은 지역이라 대출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에는 한계가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매수 시기를 늦추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매물 늘어도 강남 집값 '약세 전환' 단정 못 해
다만 거래가 위축됐다고 해서 강남 전반의 가격이 일제히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압구정 재건축 단지에서는 급매물이 먼저 팔린 뒤 일부 단지의 호가와 거래가격이 최근 다시 높아지는 흐름도 감지됩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신현대 35평은 56억원에 거래된 뒤 58억~60억원대 거래가 이어졌고, 구현대 48평도 64억5000만원에 거래된 이후 67억원대 거래가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매도자들이 가격을 더 높게 부르는 사례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관계자는 "급매물이 먼저 나가고 나면 집주인들이 그 가격보다 낮게 팔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를 두고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분간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거나 보합권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최근 강남권의 매물 증가를 곧바로 추세적인 집값 하락으로 해석하는 데 신중한 입장입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집주인들이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매도하는 것인지, 세금 부담 때문에 오랜 기간 보유한 주택을 처분하며 차익을 실현하려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며 "세제개편안의 내용이 바뀌거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매도 압력이 줄어들 수 있어 지금 상황만으로 집값이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강남권의 약세가 서울 전체 집값 안정으로 이어질지도 불확실합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5분위 배율은 6.28배로 8개월 연속 낮아졌습니다. 상위 20% 아파트 평균가격을 하위 20% 평균가격으로 나눈 값으로, 고가와 저가 아파트 간 격차가 좁혀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5분위 배율 하락만으로 서울 전체의 집값이 안정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가 아파트와 중저가 아파트의 가격 흐름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가격대별 시장 상황을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남 연구원은 "올해 말까지는 강남 등 상급지와 중저가 지역의 가격 흐름이 엇갈리는 현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전월세 매물이 부족한 외곽 지역에서는 실수요자들이 자금 여건에 맞춰 주택을 매수하려는 수요가 가격을 지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매물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집값이 안정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 소장은 "집주인은 급매로 팔려고 해도 매수자는 대출받기 어렵고 세금과 규제의 불확실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거래 가능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물만 늘어난다고 시장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전월세 공급 부족이 실수요자의 매매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임대차 시장 안정과 공급 확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강남 아파트 시장의 향방은 세제개편안의 국회 심의 결과와 금리 흐름, 재건축사업 진행 상황에 좌우될 전망입니다. 세 부담 우려로 매물이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거나 재건축사업에 속도가 붙으면 일부 단지에서는 매물 잠김과 가격 반등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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