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최병호·유근윤 기자]
지난 6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발전소 사업 현장에서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 팀장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도 국내 복귀 후 사망했습니다. 현장에선 업무 가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직원도 상당수인 걸로 파악됐습니다. 한국형 원전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가 수출 성과에만 치중한 나머지 사업 수행 과정의 구조적 문제와 파견 인력의 근무 환경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뉴스토마토>는 원전 업계 관계자 인터뷰와 비공개 문건 등을 통해 K-원전 수출의 이면에 드리운 그늘을 짚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합니다. (편집자)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TRF) 사업의 설계를 총괄하던 한전기술 팀장 A씨가 지난 6월22일(현지시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유족은 현장의 과중한 업무 압박이 사망의 배경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한전기술 측은 '루마니아 현장은 특별한 악조건이 아니었고, 고인의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컸다는 유족 말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내부 보고서의 진단은 달랐습니다. 고인의 사망 이후 현지에서 작성된 이 문건은 △체르나보다 TRF 계약 구조 △사업 착수 방식 △설계·공정 수립 △전담 조직 구성 △해외 파견 인력 관리 △사업 관리를 '실패'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 원전 시장 확대라는 목표에 매몰", "개별 인력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모든 사업 참여 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와 같이 사업을 유지하면 TRF 사업 실패는 확정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
"유럽 첫 EPC" 대대적 홍보 뒤…1년 만에 터진 '비극'
체르나보다 TRF는 중수로 원전에서 발생하는 삼중수소를 포집·제거하는 설비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023년 6월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와 체르나보다 원전 설비개선사업 설계·조달·시공(EPC) 계약을 맺었고, 한전기술은 한수원과 종합설계 용역을 수주했습니다. 계약 당시 공사 기간은 50개월이었습니다.
특히 체르나보다 원전 설비개선사업은 한수원이 유럽에서 처음 수행하는 EPC 프로젝트라 기대도 컸습니다. 2025년 9월4일 한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사업은 국제적 모범 사례"라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전기술도 그해 11월 낸 50년사 자료에서 "루마니아 TRF 사업은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을 입증한 사례"라면서 "유럽 내 추가 원전 사업 수주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1년도 되지 않아 한전기술 팀장 A씨는 현지에서 숨졌습니다. 유족은 수주 초기부터 누적된 구조적 결함과 업무 과중이 사망의 배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6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발전소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전력기술 팀장 A씨가 사망했다. 고인의 사망 이후 현장에선 사업의 문제점을 담은 내부 보고서가 작성됐다. 문건은 한국전력기술 본사까지 보고가 올라간 걸로 전해졌다. (사진=뉴스토마토)
현지서 작성된 내부 보고서에선 "사업 실패 '확정적'"
문제는 고인의 사망 사고 직후 현지에서 작성된 내부 보고서의 내용도 이 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건이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건 계약 구조입니다. 해외 원전 시장 확대라는 목표에 매몰돼 명확한 근거 없이 한전기술이 주설계자로 참여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설계 오류, 일정 지연, 발주처 요구 사항 변경 등 대부분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한전기술이 떠안게 됐다는 겁니다.
설계·공정 수립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주요 기자재 사양과 공급자 기술 정보가 확정되기 전에 구조·배관·덕트 설계를 진행하는 등 설계·구매 공정의 선후 관계를 무시한 비현실적인 일정이 수립돼 한전기술이 '추측 설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업 조직은 이를 알면서도 공정 일정의 부당함을 바로잡기보다 추측성 설계를 강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장 인력 운영도 실패 항목에 꼽혔습니다. 해외 파견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뤄졌고, 직원들이 오전 6시40분쯤 출근해 오후 5시30분까지 일하며 하루 2시간 가까이 출퇴근했다고 했습니다. 수면 부족과 번아웃에도 불구하고 개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특히 문건은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가 누적됐고,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와 같이 사업을 유지하면 사업의 실패가 확정적"이라고 했습니다. 경영진에겐 이 문제를 단일 프로젝트가 아닌 경영 리스크로 인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현장에서 작성된 내부 보고서는 한전기술 본사까지 보고가 올라간 걸로 전해졌습니다.
김태균 한국전력기술 사장이 2월27일 한국프로젝트경영협회 10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사진=한국전력기술)
업계선 "정부 '성과내기식 수주'…현장에 압박 전가"
<뉴스토마토>가 복수의 한전기술 직원들로부터 확인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공사 기간 단축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경험이 적은 노형이라 처음부터 어려움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면서 "승인 절차에서 발주처와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어 "(체르나보다 TRF에 관해) 오로지 한전기술 쪽에만 책임이 쏠리는 구조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직원 역시 "경영진이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본인 임기 내 치적만 쌓으려고 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저가 입찰로 인해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체르나보다 TRF도) 애초 사업 수주와 운영이 잘못됐다고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또 "루마니아에선 한수원이 한전기술에 지시하고, 설계를 할 수 없는 금액과 일정, 계획을 종용한 걸로 들었다"면서 "윤석열정부의 무리한 해외 원전 수출 정책에서 비롯된 걸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도 "근본적으로는 '성과 내기식 계약'이 가져온 예견된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정부는 성과를 내려고 허겁지겁 저가 수주 계약을 체결하고, 결국 사업이 적자로 돌아서면 이를 만회할 방법은 공기 단축밖에 없다"면서 "타국 살이의 외로움과 열악한 현장 인프라 속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손실과 압박을 그대로 전가하는 구조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덧붙였습니다.
경북 김천시 한국전력기술 본사. (사진=한국전력기술)
한전기술 "사장 '직속 TF' 꾸려 해외 현장 개선 진행"
한편, <뉴스토마토>는 한전기술에 A씨 유족의 주장과 체르나보다 TRF 사업의 구조적 문제, 이를 지적한 내부 문건을 인지하고 있는지 등에 관해 입장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한전기술 측은 "체르나보다 TRF 사업은 도전적이긴 했지만, 특별히 악조건이 아니었다"면서 "A씨 사망 원인은 업무 스트레스 등 어느 것도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A씨가 현장에서 '모든 것을 짊어졌다'는 식의 과중한 업무 부담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아울러 "6월30일엔 한전기술 사장 직속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해외 현장 운영 체계 개선에 나섰다"면서 "고인의 죽음 이후 사실과 다른 주장이 퍼지면서 현장 직원들이 2차 피해를 호소한다"고도 했습니다.
A씨 사망 이후 현지에서 체르나보다 TRF 사업 문제를 지적한 보고서가 작성됐고, 본사로도 보고됐다는 점에 관해선 "현재까지 회사의 공식적 지시나 보고 절차를 통해 작성·보고된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