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농촌은 가파른 고령화의 폭풍 한가운데 서 있다. 전체 농가 경영주 중 65세 이상 고령 농가 비중은 이미 절반을 넘어섰고, 농촌 고령화률은 국가 전체의 평균을 뛰어넘어 초고령화 단계에 완전히 진입했다. 그러나 이들 고령 농업인의 현실은 암담하다. 평생 논밭을 일구며 땅을 지켜왔지만, 가진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어 당장 생활비 한 푼이 아쉬운 ‘자산 유동성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농지 거래 시장마저 사실상 얼어붙으면서, 담보 농지를 활용해 매달 연금을 받는 ‘농지연금’은 고령 농민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노후를 버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서글프다. 제도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농지연금은 고령 농민의 버팀목이 되기는커녕 삐걱거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신청을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기형적인 수급 적체 현상이다. 최근 농지 거래 절벽으로 인해 농지연금 신청 수요가 급증했으나, 배정된 정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개월을 기다려도 예산 소진으로 가입 대기자로 남겨지는 농민이 전체 신청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노후 자금이 당장 시급한 고령 농가에게 “예산이 없으니 내년에 다시 오라”는 말은 사실상 노후 안전망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입자들의 높은 중도해지율이다. 어렵사리 연금에 가입하고도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는 농가가 적지 않다. 이는 실질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월 지급액 구조와 금리 변동성의 영향이 크다. 고령 농업인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상승률에 비해 연금 지급액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농지 감정평가액 산정 방식이나 높은 대출금리 부담은 가입 농가의 재정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땅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오랜 전통적 정서와 부채 상환 압박까지 맞물리면서, 연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농지연금이 당초 취지대로 농촌 고령화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농촌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제도 수술이 시급하다. 첫째, 예산의 구조적 증액과 유연한 예산 운용 체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농지연금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담보를 매개로 한 선순환형 자산 유동화 제도다. 단기적인 예산 한도에 갇혀 가입 대기자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국비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둘째, 담보 농지 평가 체계와 지급 금리의 현실화다. 공시지가나 감정평가 반영율을 농업 현장의 실제 자산가치에 맞게 현실화해 월 지급금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가입 시점의 금리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우대금리 적용 및 가입자 조건별(우대형 연금 등) 맞춤형 상품 다양화가 요구된다.
지난달 21일 대구 북구 학정동 들녘에서 한 농민이 익어가는 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셋째, 농지연금을 ‘청년농 육성’과 ‘농지 이양’에 연계하는 구조적 선순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은퇴를 희망하는 고령 농업인의 농지를 연금과 연계해 농지은행이 매입·임대하고, 이를 청년농이나 전업농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정책적 결합을 고도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고령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제공하고, 청년 농업인에게는 우량 농지를 공급해 농촌의 세대교체를 촉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농지연금은 단순한 농민 개인의 노후 대책이 아니다. 농촌 인구 소멸을 막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다. 뼈를 깎는 농업으로 평생 국토를 지켜온 고령 농민들이 노년의 삶마저 불안에 떨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관계 기관은 농지연금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즉각적이고 과감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정원호 부산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농식품정책학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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