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농협이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제공하거나 사내통신망에 게시할 경우 인사상 제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계약직 직원에 대해서는 해당 행위를 징계 절차와 별개로 대기발령 사유에 명시하고 있는데요. 제재 기준이 모호한 데다 조합장의 판단에 따라 직무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의적인 인사권 행사와 비정규직 차별 논란이 제기됩니다.
정규직은 '징계'…계약직은 '대기발령'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 정규직에 적용되는 '징계변상규정' 제4조는 징계 사유로 '명백하지 않은 사실을 언론매체에 제공, 사내통신망에 게시 등의 행위로 본 조합 또는 중앙회와 회원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신력을 실추시킨 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은 고객 정보 유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원산지 허위 표시 등의 행위와 함께 언론매체 정보 제공 및 사내통신망 게시 행위를 징계 대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계약직에게 적용되는 '계약직직원운용규정'에는 같은 유형의 행위가 징계가 아닌 별도의 대기발령 사유로 명시돼 있습니다. 제12조의2는 조합장이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직원에게 직무를 부여하지 않고 대기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직무수행 능력이나 업무 실적이 불량한 경우, 징계 사유에 해당해 인사위원회 등에 부의된 경우 등이 대기 사유에 포함됩니다.
특히 제3호에는 '명백하지 않은 사실을 적시하여 언론매체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사내통신망에 게시 등의 행위로 조합의 명예와 위신을 실추시키는 때'가 대기 사유로 적시돼 있습니다. 정규직은 해당 행위를 징계 사유로 규정한 반면, 계약직은 조합장이 직접 대기발령을 명할 수 있는 사유로 별도 명시한 것입니다.
대기발령은 직무를 부여하지 않는 인사 조치입니다. 계약직 직원의 언론 관련 행위가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해당 조항을 근거로 직무에서 배제할 수 있는 근거가 규정상 마련돼 있는 셈입니다. 정규직 규정에도 유사한 언론 관련 징계 조항이 있는데요. 정규직은 해당 행위를 징계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계약직은 이를 '대기' 사유로 별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용 방식이 다릅니다.
또한 계약직 규정은 대기 사유를 폭넓게 열거하면서 언론매체 정보 제공과 사내통신망 게시 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우리 조합 사무 형편상 필요할 때'라는 포괄적인 대기 사유까지 두고 있습니다. 대기발령 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은 만큼 조합장의 인사권이 폭넓게 행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정규직은 해당 행위가 징계 사유로 규정돼 있는 반면 계약직은 대기 사유로 별도로 규정돼 있어 차이가 있지만, 해당 규정이 2017년에 개정된 것으로 알고 있어 당시 어떤 이유로 이런 내용이 반영됐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렵다"며 "다만 현재까지 규정 개정 필요성에 대한 민원이 크게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지는 않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사. (사진=뉴스토마토)
문제는 언론에 제공한 정보의 사실관계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계약직은 정규직과 달리 해당 행위가 별도의 대기발령 사유로 규정돼 있어 조합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직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노조 관계자는 "계약직은 인사위원회 절차 없이 조합장이 바로 대기발령을 할 수 있다는 게 정규직과 가장 큰 차이점인데, 특히 명백하지 않은 사실이나 명예 훼손 여부는 판단 기준이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대기발령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과거에도 비정규직 직원이 내부 문제를 제기한 이후 해당 규정을 근거로 대기발령을 받은 사례가 있었던 만큼, 실제 적용 과정에서 직원의 정당한 문제 제기나 내부고발을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계약직의 경우 해석의 여지가 큰 기준을 대기 사유로 둔 만큼, 인사권자가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백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을 두고 직원을 대기발령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적절한 인사 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채 포괄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적 조직에서나 볼 수 있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정규직과 계약직 모두 언론 관련 행위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계약직에게는 대기발령이라는 방식으로 별도 규정한 것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기발령은 단순한 경고나 징계와 달리 직무에서 배제하는 조치이고, 경우에 따라 고용관계 단절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상당히 무거운 인사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런 조치를 불명확한 기준만으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사. (사진=연합뉴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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