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씨가 법정에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두고 "비서실장 검토했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이전에 작성된 체포 대상자 메모를 특검이 들이밀자, 양 전 원장과의 친분 등을 고리로 명단을 부인하면서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난 2024년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비서실장' 기용설이 불거졌을 때 대통령실이 극구 "검토된 바 없다"며 공식 부인했던 것과는 다른 입장입니다. '기용설'을 두고 대통령실 관계자들끼리 발언이 달라, 그 배경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씨가 올해 1월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해 있다. (사진=서울중앙지법 제공)
서울고법 형사12-1부(고법판사 이승철·조진구·김민아)는 지난 27일 윤씨 등의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 혐의 사건 항소심 공판을 열고 윤씨에 대한 피고인신문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오후 특검 주신문에서 특검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를 제시했습니다. 2024년 11월9일 오후 3시1분쯤 작성된 이 메모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 14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특검은 이 가운데 13명이 계엄 당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여 전 사령관을 통해 방첩사에 내려보낸 체포 대상자 명단과 일치한다며, 이미 체포 대상을 정해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물었습니다.
해당 메모에 들어가 있는 이름은 '이재명·조국·한동훈·정청래·김민석·우원식·이학영·박찬대·김민웅·양경수·최재영·김어준·양정천(양정철)·조해주'입니다. 이에 윤씨는 "알지도 못한다"라고 답한 뒤, 명단에 오른 인물들을 짚어 얘기했습니다. 특히 그는 양 전 원장에 대해서는 오래 안 사이라며 "비서실장으로 검토했던 사람"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 "최재영은 왜 나와"라며 방송인 김어준씨와 국회의원들이 뒤섞여 있고, "사람들을 분류 내지는 캐릭터화할 키워드가 전혀 없는 집단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2024년 4월, 정국 뒤흔든 '박영선·양정철 카드'
윤씨가 법정에서 꺼낸 '양정철 비서실장 검토'는 2024년 4월 정국을 들썩이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참패하자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의를 밝혔습니다.
후임 인선이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4월17일 아침 TV조선과 YTN이 대통령실 관계자를 인용해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보도 내용은 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양 전 원장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양 전 원장은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로 불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입니다. 문재인정부 시절 윤씨를 서울중앙지검장 및 검찰총장에 천거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검토된 바 없다"→"유력 검토 맞다"…엇갈린 대통령실
파장은 컸습니다. 대통령실은 보도 직후인 오전 8시53분쯤 대변인실 명의 공지를 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박영선, 양정철 등의 인선은 검토된 바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통령실 정무·홍보 라인 관계자들은 "황당하다", "대통령 의중이 전혀 아닌 걸로 안다"며 진화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이관섭 비서실장은 애초 보도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며 체면을 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식 부인이 나온 같은 날, 다른 목소리가 대통령실 안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익명의 대통령실 관계자가 연합뉴스 등에 박영선·양정철 등 "모두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은 맞다"고 밝힌 겁니다. 대변인실은 '검토한 적 없다'고 하고, 또 다른 관계자는 '검토 중인 게 맞다'고 하는 대통령실 내부 엇박자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김건희 라인'으로 번진 의혹
공식 인사 라인도 모르는 인사 구상이 언론에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의혹은 곧 '비선'으로 옮겨붙었습니다.
본지는 2024년 4월18일 <
(단독)대통령실조차 '두 목소리'…김건희·김한길 배경설> 기사를 통해 박영선·양정철 구상 과정에 김건희씨가 관여됐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사정에 정통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박영선·양정철 구상에 김 여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윤 대통령과 논의했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오섭 전 정무수석, 이도운 전 홍보수석도 철저히 배제됐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사권자의 법정 발언…위증은 아니지만
2년여 만에 윤씨 입에서 나온 '비서실장 검토'는 당시 대통령실 공식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대통령실이 대변인실 공지로 부인하고, 이틀 뒤 '대변인실 입장이 대통령실 입장'이라며 거듭 선을 그었던 것과 달리 최종 인사권자가 직접 검토 사실을 시인한 겁니다.
윤씨의 이번 발언이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실의 공식 해명이 사실과 달랐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공식 인사 라인 밖에서 인사가 논의됐다는 비선 의혹도 다시 소환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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