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64돌 제헌절과 박근혜의 '위헌적 발언'
입력 : 2012-07-17 11:04:16 수정 : 2012-07-17 11:05:13
[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오늘은 2012년 7월17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한지 64주년이 되는 제헌절(制憲節)이다.
 
1948년 제정된 헌법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권력욕에 의해 부산정치파동을 불러 일으킨 '발췌개헌'(독재정권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개헌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고 자신을 지지하는 국회의원들만에 의해 헌법을 바꾼 사건), '사사오입개헌'(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되어야 할 개헌안을 반올림으로 통과시킨 사건) 등 2회에 걸친 개헌을 통해 오욕을 겪었다.
 
이어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혁명에 의해 민주주의를 강화한 3차 헌법개정, 반민주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소급입법의 근거를 만든 4차 헌법개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민주적인 헌법은 얼마 가지 못하고 박정희 등 군부에 의한 '5.16 쿠데타'(coup d'État : 무력에 의해 정권을 빼앗는 일. '국가에 대한 일격')로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이어 초헌법적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5차 개헌이 이루어졌고,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가 3선, 4선을 가능케 하기 위해 6차 개헌을 감행해 재선금지 조항을 없애버렸다.
 
급기야 1972년 10월에는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하는 '유신헌법(維新憲法)'까지 등장했다. 유신헌법은 심지어 '5.16쿠데타'를 '5.16혁명'이라고 선언했다. 이같은 7차 개헌은 개헌이 아니라 헌법을 껍데기로 만들어버린 '헌법파괴행위'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현실 세계에서는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차베스가 박정희와 거의 똑같은 행태로 종신집권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차베스의 미래가 박정희가 갔던 그 길로 향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필리핀의 마르코스, 리비아의 카다피, 이집트의 무바라크 등 종신집권을 꿈꿨던 독재자들의 말로는 대체로 엇비슷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헌법이란 존재는 그 존엄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헌법은 본래 '국민의 결단'을 집약해놓은 문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제헌헌법과 4·19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을 제외하고는 '국민의 결단'이 아닌 '권력자의 결단'을 담아놓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3대 세습의 북한도 '조선사회주의헌법'을 통해 겉포장은 '인민들의 결단'을 담아놓은 문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본질은 '권력자의 결단'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이는 현존하는 전 세계의 모든 독재국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의 불행한 역사는 '5.16쿠데타'를 본보기로 삼은 전두환 등 신군부에 의한 '12.12쿠데타'로 또다시 오욕을 겪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는 시민들의 저항에 의해 87년 헌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헌법이 바로 지금의 헌법이다.
 
벌써 25년이나 지나면서 그 한계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들은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 있다.
 
그 중에서도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의원이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회와 새누리당을 완전히 장악해 이미 대통령이 된 것처럼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 박 의원은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당시 불안한 경제·안보 상황을 볼 때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반대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는 만큼 이 문제를 놓고 옳으니 그르니 하기보다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박 의원의 발언은 사실상 현행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발언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박 의원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이라도 읽어보기 바란다. 87년 개정된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특히 필자가 굵은 글씨체로 표시해놓은 부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선언해놓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親日派)에게 있지 않고, 이에 저항했던 독립운동세력과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4·19혁명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를 탱크로 밀어버린 '5·16쿠데타' 세력에게 있지 않음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파괴행위로 평가받고 있는 유신헌법이 5·16쿠데타를 5·16혁명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삭제해버렸다.
 
'5·16쿠데타'는 박 의원의 말처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짓밟은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었고 '반란'이었다.
 
"옳으니 그르니 하기보다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사건이 아니라 이미 '군사반란'으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이다. 설사 경제적 업적이 있다고 하여 '쿠데타'가 '혁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상 그 경제업적은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자 했던 근면하고 성실한 우리들의 앞 세대들이 피땀으로 일구어낸 것이다)
 
박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시민들은 소비에트연방의 악명높은 독재자 스탈린의 외동딸 스베틀라나의 어록을 돌려가며 읽고 있다.
 
"아버지가 독재할 때 왜 여러분은 침묵하셨습니까? 그건 공모입니다. 나도 아버지가 잘하는 줄 알고 침묵했습니다. 나도 공모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제 죽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에 대한 비판과 욕을 나에게 하십시오." (스베틀라나의 고백에서 발췌)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런 만큼 역사의 물줄기도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굽이쳐 흐른다. 정의로 향하는 길도 구불구불하다.
 
그러나 적어도 인류의 역사는 잠시의 퇴행은 있어도 늘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보다 완전한 자유를 향해, 보다 완전한 정의를 향해, 보다 평등한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라는 박 의원의 퇴행적인 역사의식은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드는 토대를 닦기 위해 피흘린 수많은 선조들을 욕보이는 것이다.
 
64주년 제헌절을 맞아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의원에게 '대한민국 헌법'과 '독재자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의 회고록'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스스로 '독재자의 딸'로 자신을 규정하기 보다,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진 '정치인 박근혜'로 각인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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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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