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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의 정당명 개정 논의에 부쳐
오늘 부는 바람은
2015-12-08 09:06:58 2015-12-08 09:06:58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당명 개정을 두고 논의 중으로 알려졌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투표할 때마다 이름이 달랐던 것 같은 이 당에 표를 줬던 지지자로서 새로운 정당 이름을 생각해봤다. 깊은 고민 끝에, 식상하나마 아마 여러 번 제안 받았거나 검토됐을 법한 ‘야당’을 새 이름으로 내놓는다. 변함없이 지지해왔으니 의견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이 간판을 야당으로 고쳐다는 것은 명분과 실리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볼 만하다.
 
명분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이름이 대상을 정확히 담을 수는 없다. 언어의 기본적인 한계다. 하지만 대상을 손실 없이 그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야당은 그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름으로 맞춤하다. 집권하지 않은 정당을 일상에서 우리는 야당이라고 부른다. 일단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집권하지 않았으니 야당이 맞다. 더 중요한 건 집권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함께했던 크고 작은 선거를 곱씹어 보자. 전망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최근의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항상 새누리당에게 양보했다. 2012년 총선?대선이 그랬고, 작년 7월의 재?보궐선거가 그랬다. 한결같은 2위 성적표는 이들의 한심한 집권의지를 젖혀두고는 설명할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지난달 17일,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거칠게 표현해 정당의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국민은 이미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년 야당으로 여긴다. 새누리당에 반대해서 투표하고, 개표 결과가 나오는 저녁쯤에 당 대표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투표일의 경험이다. 또,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제외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비아냥도 이번에 거르도록 하자. 2013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은 갑(甲)의 횡포에서 을(乙)을 지키겠다며 ‘을(乙)지로위원회’를 만들었다. 최근 불거진 카드 결제 단말기 설치 시집(詩集) 판매 의혹, 그리고 아들의 로스쿨 졸업시험과 관련한 압력행사 의혹?딸의 대기업 경력 변호사 채용과 관련한 영향력 행사 의혹 등의 주인공은 을지로위원회를 거쳤거나 현재 소속이다. 이런 의혹과 당의 미적지근한 대처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그럴 거면 새누리당과 합당해라’는 모욕에 힘을 실어준다. 측은지심이 있다면, 명색이 상호가 야당인데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이름을 야당으로 바꿔서 얻는 실리는 어떤 게 있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의 선명성이란 정당 로고의 바다파랑 색깔 정도가 전부인데, 장기적으로는 야권 유권자에게 외면당할 것을 어렵지 않게 내다볼 수 있다. 이름을 야당으로 바꾸고 지켜나간다면, 의외의 낙전 수입을 챙길 수 있다. 2012년 1월, 지금의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에서 지금 이름으로 바꿨고, 그해 4월 총선에서 그새 창당한 ‘한나라당’이 이름에 힘입어 전국 기준 0.85%의 득표, 특히 경북에서는 2.05%의 득표를 올렸던 걸 기억하자. 요즘 같이 제1야당 하기 좋은 시절에야 우습겠지만, 언제 저 득표율이 절실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름을 야당으로 바꿔 놓으면 다른 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을 공격하는 것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태까지 그래왔듯 정부?여당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닐 수많은 사안에서, 다른 야당들이 ‘야당’으로 이름을 바꾼 새정치민주연합을 공격할 때를 생각해보자. 야당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바뀐 이름인 ‘야당’을 호명한 뒤에 그 뒤에 안 좋은 말을 붙이기란 쉽지 않다. 밖에서 보기엔 야당이 야당을 욕하는 것, 그러니까 스스로 욕하는 것으로 비칠 테니까. 좀 더 정확하게는 군소 정당의 논평 따위가 보도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겠지만. 어쨌거나, 덩치 큰 야당이 견제받지 않고 제 역할을 못하는 건 정치의 퇴보로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런 문제를 크게 염려하진 않으니 상관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치며 정한 이름이다. 새정치와 민주를 두고 꽤 신경전을 벌였다. 둘 다 넣은 것까지는 괜찮지만, 문제는 그럴싸한 말은 다 넣었으면서 그 값을 못했다는 데에 있다. 이름을 야당으로 바꾸면 무엇을 넣고 빼느냐, 무엇이 앞에 오고 뒤로 밀리느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다. 덤으로 새정치나 민주 같이 지키지도 못할 걸 챙기느라 노력할 필요도 없고, 야당답게 반대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선거에서 항상 네거티브로 일관해왔고, 또 졌다. 해오던 대로 해나가면 된다.
 
 
엄근진 을지로위원회. 사진/바람아시아
 
이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당명으로 야당은 고려해볼 만한 선택이다. 명분과 실리 모두 잡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추진력을 생각해보면, 당명 개정이 총선 전에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어차피 좋은 뜻으로 이름 지어봐야 그렇게 하지도 않을 텐데, 적당히 매듭짓고 넘어가자. 의원들은 당명 같은 것이야 아무래도 좋고, 지역구 관리하러 갈 마음이 굴뚝같다. 혹시라도 누군가 물어볼 수는 있겠다. 기껏 이름을 야당으로 바꿨는데 2017년 대선에서 이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내겠다고 광장으로 나온 시민이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걸 두고 여당 국회의원이 “미국에선 경찰이 총을 쏴 시민을 죽여도 정당한 것으로 나온다”고 말하는 흉흉한 시국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집권 같은 공상이나 할 수 있는 여유가 얄미울 정도지만, 큰 문제는 없다. 정당 이름은 그때 가서 또 바꾸면 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름을 바꾸는 것에 관대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몇 달 사이에 열린우리당?민주당?중도개혁통합신당?중도통합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 등의 간판을 올렸다 내렸다, 당을 합쳤다 쪼갰다 했던 게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다. 하지만 야당으로 이름을 바꾼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거쳐 온 숱한 이름 중에서 그 어떤 이름보다 오래갈 건 확실하니 괜한 걱정은 접어두자.
 
 
 
 
김용재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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