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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바꾼 창조경제 정책금융…'눈먼 돈' 될까 우려
72.4조 중 겨우 7.4조만 투자…투자계획 구체성·산업특성 고려 '부족'
2016-01-19 17:51:01 2016-01-19 17:51:27
금융위원회가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 분야에만 72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쏟아붓기로 한 것에 대해 이름만 바꾼 창조경제 정책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소위 1년 떼우자는 전형적인 '대통령 보여주기식 보고'라는 지적이다. 
 
투자 규모와 분야 등이 나열돼 있을 뿐 투자계획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지원책 대부분이 대출이어서 투자수요가 많은 창조경제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먼 돈'을 양산하는 등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까지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18일 '2016년 대통령 제2차 업무보고'에서 ICT 융복합(스마트카), 바이오·헬스(수술로봇), 에너지 산업(전기자동차), 첨단 신소재(탄소섬유), 고급 소비재(화장품) 등을 창조경제 분야로 규정하고 72조40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이런 분야에 대출 위주로 지원할 전망이다.
 
지원 방식을 보면, 자금 회수 가능성이 비교적 큰 대출이 가장 많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미래 신성장동력 분야와 개발기술 사업화 기업 등에 45조6000억원을 지원할 목표다. 지적재산권(IP) 사업화 자금대출, 고성장기업 대출, 신성장 유망 대출 등의 방식이 마련될 예정이다. 대출과 큰 차이가 없는 보증도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기술창업이나 연구·개발(R&D), 신성장동력 분야에 총 19조4000억원을 공급할 계획이다.
 
반대로, 자금 회수 가능성이 가장 낮지만 지원대상 기업의 선호도가 높은 투자는 규모는 가장 적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IT 벤처창업, 에너지신산업 등에 직·간접적으로 7조4000억원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스타트업펀드, 해외진출펀드, 기술금융펀드 등의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이런 계획에 대해 이른바 창조경제 분야 전문가들은 현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 경험이 있는 ICT 기업 대표는 "ICT 분야의 창업이나 기업 성장을 유도하려면 갚아야 하는 부담이 있는 대출보다는 투자가 더 선호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이 실패했을 때 빚더미에 앉을 가능성이 크다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규모 정책금융이 눈먼 돈이 되지 않고 실제 필요한 곳에 투입되려면 관리 체계를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을 받았던 한 스타트업 대표는 "혈세로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만큼 신용도나 회수 가능성이 중요하겠지만, 대출을 받으러 가보면 기업의 사업계획보다는 매출액,  담보 같은 걸 더 많이 본다"며 "이미 성장세가 확인돼 대출이나 보증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돈을 가져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지적했다. 성장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대출받는 것은 어렵지만, 대출을 한 번 받은 기업들은 대부분 쉽게 대출 만기를 연장할 수 있어 은행권 부실 등의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금융위는 대출만기 연장이 전체의 80~90%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3.8% 수준인 연간 연체율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인식하고 있다.
 
국내 한 핀테크(기술+금융) 전문가는 "도전정신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요한 창조경제가 조성되려면 이런 돈이 제대로 투자가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업무보고에 제시됐어야 했다"며 "업무보고 내용만 보면 대통령 앞에서 반짝거려보일려고 지원 규모만 늘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금융위도 "이런 산업은 초기 리스크(위험)가 큰 점을 고려해 투자·융자와 기술기반 대출 등으로 지원 방식을 다각화할 방침"이라고 업무보고에서 밝히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 지원하는 산업 분야가 얼마 사이에 확 바뀌겠느냐"며 "대통령에 업무보고를 해야 하니까 '레떼루'(상표)을 창조경제라고 한 것이지 기존에 하고 있던 정책금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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