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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⑪“실로 한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으매”
그 남자의 일생
2016-03-21 06:00:00 2016-03-21 06:00:00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언젠가부터 '여자의 일생'만큼이나 어깨 눌린 이 땅의 '남자의 일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연간 노동시간을 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멕시코와 1, 2위를 다투는 현실 속에서 과로사가 낯설지 않은 곳.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양산된 '기러기 아빠'가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사전에 포함될 정도로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 된 나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홀로 해외로 떠난 60~70년대의 기러기 아빠나, 이른바 자녀교육을 위해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은 2000년대의 기러기 아빠나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의 직장인들 모습. 사진/뉴시스
 
'기러기 아빠' 애가(哀歌), '김목공이' 애가(哀歌) 
 
요즘의 기러기 아빠들에게는 아마도 낯설 옛 노래가 하나 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씨의 '기러기 아빠'가 그것인데, 1969년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이자 1970년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 사용된 인기곡이었지만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있다가 1987년에서야 해금된다. 금지 이유는 노래가 당시의 재건정책에 맞지 않게 비탄조라는 것이었는데, 그 이면에는 "아빠는 어디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 아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 길 잃은 기러기"라는 가사가 월남전에 파병되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인보>를 읽다보면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 기구한 '남자의 일생'이 눈에 들어와 가슴을 적시는데, "김목공이" 아저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실로 심정 좋아 기구하여라 / 대천 관촌 토박이 김목공이 죽었다 / 향년 육십 / 그의 마누라 말에는 / 세상이 싫어 술로 세월 보내다 / 술병으로 죽었다 한다"('김목공이 일대기', 9권). 세상이 싫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인생 얘기를 들어보자.
 
고은 시인 육필원고 '김목공이 일대기' 초안. ⓒ고은재단
 
"해방 이후 그 위도 아래도 없는 / 젊은 날 / 스물한살 때는 / 자전거를 한 손으로 / 번쩍 들어올리기 내기에서 / 한 번도 쉬지 않고 / 백 번 넘게 / 백일곱 번 들어올려 / 일등을 차지"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던 김목공이는 "국방경비대에 들어갔다가 / 된 기합 받고 그만두고 돌아와 / 6·25를 맞"게 된다. "이번에는 대천 신석공 씨 따라 / 인민위원회 일을 보다가 / 수복 후 오서산에서 붙잡혀 / 자위대에 끌려"오게 되는데, "때가 때인지라 즉결처분으로 죽어나갈 판"에, "그의 처단을 말"리는 "한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다(앞의 시. 여기서 김목공은 직업을 가리키나 신석공은 이름이다).
 
고은 시인 육필원고 '김목공이 일대기' 초안. ⓒ고은재단
고은 시인 육필원고 '김목공이 일대기' 초안. ⓒ고은재단
 
죽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구속되어 / 대천역전 농협창고에 들어가 / 여러 달 살다가 / 매맞고 나"온 그가 "이번에는 국군에 입대했다 / 휴전 그해 / 부상병으로 목발 짚고 돌아왔다 / 가을 벼 베는 무렵 / 그렇게도 용쓰던 힘찬 다리에 / 살점 다 떨어져 나간 부상병으로 왔다"(앞의 시). 요동치는 시대에 어찌 개인의 의지대로 살 수 있으랴. 얼핏 새옹지마식 뒤집기의 길흉화복이 연상되지만, 실은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낸 역사가 강요한 운명이다. 그 시절의 수많은 다른 희생자들처럼 김목공이 역시 남북 간 이데올로기와 한국전쟁의 제물이 되어 목발을 짚고 귀향한 후, "제재소 나무 켜는 보조원으로 다니는데 / 집에 돌아올 때는 / 나뭇조각 따위 죽데기 한 짐 지고 왔다"(앞의 시). 
 
한편, "6·25 바로 전 장가"를 간 김목공이에게 웃지도 울지도 못할 황당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인공 때 각시랑 자는데 / 아닌밤중에 / 미군 비행기가 떨어뜨린 폭탄이 / 간사지 둑 윗논에 떨어져 / 그 파편이 날아와 / 김목공이네 집 기둥 뚫고 / 다시 문설주 뚫고 / 방으로 날아들었는데 / 이렇게 뚫고 오는 동안 / 그 힘 줄어서 / 방 안 삿자리에 떨어질 때는 살짝 떨어졌다 / 그저 김목공이 마누라 엉덩이 좀 데었을 뿐"(앞의 시). 마지막 행에 배어 있는 고은 시인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더불어 독자는 김목공이에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그나마 천우신조라고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김목공이' 이야기, 김목공의 아버지 이야기
 
그러나 '김목공이 일대기'를 읊는 이 긴 시의 마지막에 이르면, 그가 겪은 부당한 삶이 떠올라 비탄스럽다 못해 허망하다. "이런 세월 저런 세월 / 무서운 나날 보내며 / 그 기골 장대한 헌헌장부가 시들어와서 / 이제는 겨우 나무 찌끄러기 죽데기 아니면 / 나무 톱밥 한 지게 끙 지고 돌아오며 / 힘겨워 한두 번 지게 받치고 쉬어야 한다 // 실로 한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 세월이 아니었으매 / 약해질 대로 약해져 / 나이 육십 되고 나자 눈감아버렸다 / 명주옷 한벌 입어 보지 못한 일생 / 사촌까지 따스해진다는 / 그런 옷 한벌 천신해보지 못하고 / 늘 기운 옷 입거나 / 해진 베등거리 걸치거나 하고 // 그에게 가장 좋은 옷은 / 국방경비대 때 군복이었고 / 인공 때 삼베바지였고 / 국군 나가 미국 군복이었다"('김목공이 일대기', 9권). 60평생 살면서 김목공이 입었던 가장 좋은 옷이 국방경비대 군복에, 인공 때 삼베바지에, 미군복이라는 것, 그의 일생을 고난에 빠뜨린 주범의 상징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고은 시인은 '김목공이 일대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그의 가족들을 한 명씩 열거하며 시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백성들이다. 한반도에서 아버지로 살아가는 또 한 명의 인물, 즉 김목공이의 아버지이자 김목공이의 두 이복 여동생 옥순이와 정분이의 아버지는 "평생 조끼 하나 입지 못하고 / 늘 동저고리 바람으로 살아온 가난이나 판무식이나 / 세상 이치야 먼동 터 훤했다"('옥순이 아버지', 9권). "술보다 담배가 좋"아서 "금방 피우고 나 / 다시 담배 꾹꾹 눌러 불붙"이는 그는 "한산 이씨 문구네 형 / 갈말 여릿재 골창에서 / 총 맞아 죽은 것을 달려가 묻어"준 사람이다. "세월 흘러 / 그 무덤 면례도 / 정분이 아버지가 나서서 해주었다"(앞의 시). 좌·우익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험한 세월 속에서는 인정으로 시체 한 구를 묻어주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인이 노래하는 희망처럼 "모진 세월일수록 / 거기 반드시 인정 깊으나 깊은 사람 있다 / 변하는 세월일수록 / 세월 뒤켠에 변할 줄 모르는 사람 있다 / … / 이 세상 아무리 망해버려도 / 다시 세상 일으키는 사람 있다 / 그런 사람 가까이 / 멀뚱멀뚱 옛 마음씨 그대로인 사람 있다"(앞의 시).
 
두 아낙네 이야기
 
김목공의 계모와 아내에 대한 시들 역시 이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지를 잘 보여준다. "옥순이 생모 / 그러니까 옥순이 배다른 오빠 김목공의 계모 / 갯것장수 소금장수 나물장수 채소장수 / 어느 장수 안해본 것 없다 / … / 큰 귀 두 개 가진 옥순이 어머니 / 나이 여든까지도 / 수수모가지 광주리 이고 / 저문 수수밭 휘영청 일어섰다 / 그 걸음발에서 부싯돌불 빛났다 / 길하고 하나인 아낙 / 흙하고 둘이 아닌 아낙 / 고려 대지의 아낙 / 하늘이 무너져내려도 끄떡없는 아낙"('옥순이 어머니', 9권). 이런 아낙네 있어 이 땅이 지금 우리에게 이어진 것 아니겠는가. 
  
김목공의 처도 그러하다. "고향 한산에서 / 일찌감치 부모 저세상 보내고 / 어찌어찌 한내까지 흘러와 / 남의집살이하다가 / 김목공이와 눈맞"은 김목공의 처, 작은 키의 미자 어머니는, "그러나 쟁기질 빼놓고는 / 무슨 일이나 억척이었다 / 시부모 섬기는 것도 몸에 불났다 // 그런 미자 어머니 하는 말 있다 / 부자는 곡간에서 인심 나고 / 가난뱅이야 아침이슬에서 복 나온다 / 부지런해야 한다 / 부지런해야 한다 / 부지런하면 / 하늘이 우박이라도 내려주신다"('미자 어머니', 9권). 
  
'김목공이 일대기'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개인의 삶으로 투영된 비극이지만, 김목공이 아저씨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처가 있어 우리가 오늘을 사는 것은 분명하다. 형태는 변화하였을지라도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는 내용면에서는 동일한 무게를 지고 가는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물론 어머니들에게도!―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한국사회의 교육현실이 암담할지라도, 만약 가정에 따라 다른 복합적인 상황들―특수교육의 필요나 부부갈등 등―이 얽혀있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단순히 영어교육 같은 목적을 위해 '기러기 아빠'로 이산가족이 되어 '송금인'의 역할을 하는 기형적인 사회현상은 극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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